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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며 생각하며]배기동/문화재 보존기금 마련하자

입력 | 2000-06-28 18:52:00


최근 서울 풍납동 유적과 관련해 벌어진 일련의 일은 전통문화 보존에 대한 우리의 의식 수준을 단적으로 보여 주었다. 문제의 발단과정이나 개발과 보존의 첨예한 갈등에서 문화재 보존의 현재를 볼 수 있었다. 또한 일반인의 적극적인 문화재 인식은 문화재 정책의 미래를 지시하는 것 같아 문화재 보존사에 중요한 전기가 될 것으로도 보인다.

▼개인손해 국가서 보상해야▼

풍납동 토성은 이미 오래 전부터 잘 알려져 있던 유적이다. 일제시대에는 경성의 한 전차회사에서 풍납토성 관광안내책자를 발간한 적도 있었다. 내가 대학을 다니던 70년대 초에 현장답사를 나가면 그 일대는 집 몇 채를 제외하고는 텅빈 벌판이었고 토성을 따라 걷노라면 워커힐과 아차산성 너머 한강의 풍광을 한껏 즐길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사적(史蹟)으로 지정된 축성 부분을 아파트와 단독주택이 빼곡히 둘러싸 버렸다. 70, 80년대를 지나면서 이곳이 서민들을 위한 주택지로 탈바꿈한 것이다.

오늘날의 문제는 우리 관련 학자들의 탓이 크다. 성을 보존하는데 내부의 유적들을 그대로 두고 성곽만 보존하는 전시성(展示性) 유적보존을 방조하였으니 말이다. 더군다나 백제 도성(都城)일 수도 있는 유적이었는데.

전 국토가 개발에 따른 몸살을 앓고 있는 오늘, 유적을 보존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아직도 많은 개발 당사자들은 문화재 발굴과 보존에 들어가는 경비와 시간에 대해서 억울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개발 당사자가 개인이고 많은 손해를 감수해야 한다면 문화재는 그 당사자에게는 원수같은 존재가 되고 발굴하는 고고학자는 악마로 보이게 될 것이다. 실제로 발굴현장에서도 황당한 일을 당하는 경우들이 적지 않은 실정이다.

몇해 전, 국가가 지정한 사적 내에 땅을 가진 사람이 자신의 땅에 유물이 없다는 것을 증명해 달라며 300만원을 갖고 와 시굴 조사를 해달라고 한 적이 있다. 결국 다 훼손되었다고 주장하던 땅에서 유물이 나와 사적 해제 문제는 없던 일로 됐지만 그 땅 주인의 늘어진 어깨와 망연해 하는 눈빛을 보고 시굴 당사자로서 가슴이 아팠다.

경기 파주 임진강변에서 홍수로 파괴된 삼국시대 주거지를 발굴할 때는 사라진 농토를 시급히 복원하려는 덤프트럭 앞에서, 지금은 일본으로 유학간 처녀 조사팀장이 드러누워 항의함으로써 겨우 조사를 마칠 수 있었다.

농사를 지어야 하는 농부의 마음이야 어찌 모를까마는 발굴을 대충대충 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현재 서울대 박물관 특별전에 전시중인 남한에서 몇점 되지 않는 고구려 토기가 바로 거기에서 출토된 것이다. 풍납동의 경당아파트 건립 주민들도 곤혹스럽기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모든 이의 자랑이어야 하고 마음의 양식이 돼야 할 문화재가 이렇듯 가슴을 아프게 하다니…. 이것은 아직도 문화재에 대한 가치 인식이 높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제도와 행정체계의 미비가 더 큰 현실적인 이유일 것이다.

근본적으로는 문화재로 인한 개인의 손해를 보상할 수 있는 국가적인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 문화재관리청의 1년 예산이 2000억원 정도밖에 안되는 현실에서는 도저히 개선될 수 없다.

개발 이익의 일부를 문화재 보존기금으로 적립해 운용하여 개인의 손실을 보전해 주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그리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정책을 수행하는 능력을 갖도록 하고 또한 문화재 문제를 신속하게 처리해 쓸데없이 시간과 인력을 낭비하지 말아야 한다.

▼개발이익 일부 적립할만▼

지금 풍납동 유적 보존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적극적인 지지를 보내고 있다. 이는 문화재 정책을 정부의 주변적인 업무가 아니라 핵심적인 업무로 바꾸어야 한다는 것을 시사하는 것이다.

새로운 세기에는 우리나라에도 프랑스 니스해안의 테라 아마타 구석기 유적처럼 아파트 지하에도 유적 박물관이 생기기도 하고 그래서 문화 유적 때문에 마을이 유명해지고 마을 사람들의 마음과 재산이 풍부해지길 바라는 마음이다.

배기동(한양대교수·고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