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주장이 아무리 타당하다 하더라도 상대방에게 폭력적 수단으로 제 입장만 강요한다면 그것은 테러와 다름없다. 그 상대가 언론사일 경우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언론사에 대한 위협은 곧 언론자유의 침해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고엽제 후유의증 전우회’ 회원 2200여명이 보도내용에 불만을 품고 엊그제 한겨레신문사 앞에서 시위을 벌이다 일부 회원들이 건물 안으로 들어가 집기를 부수고 전선을 끊는 등 신문제작을 방해한 행위는 그들 주장의 옳고 그름을 떠나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시위대는 신문제작용 컴퓨터와 자동차 등을 부수고 방화까지 시도했다고 한다.
이들은 ‘한겨레21’의 ‘베트남 참전 용사에 의한 베트남 양민 학살’ 보도가 전우들의 명예를 실추시키고 법원에 계류중인 고엽제 피해 손해배상 소송 재판에도 나쁜 영향을 주고 있다며 신문사측에 항의했다는 보도다. 전우회측은 또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에서는 현지 주민의 희생이 불가피한 것인데도 한겨레신문은 마치 참전용사들이 고의적으로 베트남 주민들을 학살한 것처럼 보도해 전우들의 인격을 매도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 한겨레측은 “그 기사는 베트남전에 참전했던 장병들의 양심적 증언을 바탕으로 한 객관적 사실”이라며 “국적을 불문하고 인간의 존엄성은 존중되어야 한다는 믿음에서 보도했다”고 입장을 밝혔다.
사실 베트남 전쟁은 우리로서도 잊지 못할 전쟁이다. 우리나라는 1964년부터 1973년까지 31만여명의 병력을 파견해 전사 5000여명, 부상 1만5000여명이라는 큰 희생을 치렀다. 고엽제 피해자들은 아직도 전쟁의 악몽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자신은 물론 2세들까지 고통을 받고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한다.
하지만 이들은 국가유공자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고 미국의 고엽제 제조사를 상대로 한 소송도 언제쯤 결말이 날지 기약조차 할 수 없는 실정이다. 이번 난동도 그같은 ‘울분’의 토로였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아무리 그럴듯한 명분이나 주장이 깔려있다 하더라도 폭력을 동원해 신문제작을 방해한 것은 결코 용서받을 수 없는 범죄행위다. 정부 당국은 난동을 부린 범법자를 가려내 법에 따라 엄정 처리해야 할 것이다.
거듭 강조하지만 이제 폭력시위는 근절돼야 한다. 보도내용에 불만이 있다면 관련법에 규정된 정당한 절차에 따라 항의해야 하고 그래야만 설득력이 있다. 힘으로 밀어붙이고 보자는 식의 ‘떼쓰기’는 이제 버려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