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역사가 어떻게 발전하느냐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하다. 어떤 계기로 농업 혁명이 일어났고 언제까지라도 계속될 것 같던 절대 왕정은 왜 무너졌는지, 미국이 2차대전에 참전한 이유는 무엇인지를 설명할 수는 있지만 역사를 그렇게 이끌어간 힘이 무엇인지에 대해 정확하게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 한 가지. 개인이 역사의 도도한 물결을 거스르기는 힘들다는 점이다. 알렉산더나 마르크스 히틀러 같은 사람들도 역사의 흐름을 거슬렀다면 이름을 남기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 ‘불가능’을 가능케하는 게임이 있다.
‘문명 2(Civilization Ⅱ)’는 건설 시뮬레이션 게임이다. 원시 부족부터 시작해 문명을 차근차근 발전시켜서 새로운 행성 ‘알파 센타우리’로 이주해야 한다. 새로운 곳을 탐험하고 기술을 발전시키는 한편 영토 확장을 위해 전쟁을 벌이기도 한다.
물론 인류의 역사가 실제 걸어온 길을 따라갈 필요는 없다. 어떤 식으로 문명을 발전시켜 우주선을 발사할 지는 마음대로다. 그중 제일 손쉬운 길은 정복자의 길이다. 군사력을 발전시켜 세계를 정복하고 세금은 왕창 걷고 환경에는 아무 신경 안 쓰면 된다.
하지만 이 게임의 묘미는 손쉬운 승리에 있는 게 아니다. 내 마음대로,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역사를 이끌어 간다는 점에 있다. 이제 역사의 흐름에 무기력하게 끌려갈 필요가 없다.
마음에 들지 않는 역사는 다시 쓰면 된다. 몽상가의 꿈, 이미 포기한 꿈이 실현된다. 전쟁이 아닌 인간의 행복을 위한 기술, 핵 개발보다 공해를 없애기 위한 투자, 모두가 평등하게 모든 것을 공유하며 사는 이상국가를 만든다.
쉬운 일은 아니다. 툭하면 쳐들어오는 이웃 나라라도 절대 먼저 공격하지 않고 참아야 한다. 신기술만 개발하면 들이닥쳐 다짜고짜 내놓으라는 요구도 ‘기술은 공유해야지’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인다. 핵 시대에 접어들면 상황은 더 악화된다. ‘우리 핵무기 가지고 있다. 너 뭐 줄래?’하는 식이다.
그래도 불쾌한 일만 있는 건 아니다. 제국주의의 공격에 주요 도시들이 함락됐을 때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전쟁이라곤 모르던 시민들이 낡은 소총 한 자루씩을 들고 빨치산 투쟁에 나섰다. 적을 몰아내고 빼았겼던 영토를 모두 되찾은 후 수도에서 벌어지는 퍼레이드와 환호. 물질적 군사적 약세에도 불구하고 함께 건설하고 공유하는 모두의 나라를 지키기 위해 싸우고 승리하고 기뻐한다.
비록 모니터 위에서지만 자신의 이상에 따라 새로운 문명을 건설해 나가는 즐거움은 믿을 수 없는 경험이다. 지금까지의 역사에 불만이 많은 사람이라면 더욱 그렇다. ‘문명 2’는 이 놀라운 경험을 제공한다.
박상우(게임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