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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지방자치, 아직 갈 길 멀다

입력 | 2000-06-30 18:50:00


주민들이 직접 자치단체장과 지방의원을 뽑고 지방의회가 자치행정을 감시하는 본격 지방자치가 도입된 지 1일로 5년이 됐다. 그동안 주민이 곧 주인이라는 의식이 어느 정도 뿌리를 내렸고 공공부문에도 경쟁원리가 도입되는 등 각 분야에서 여러 가지 변화가 나타났지만 부작용과 시행착오도 적지 않았다. 지방자치의 정착을 위해 앞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가 한두 가지가 아니라는 얘기다.

우선 표(票)를 의식한 자치단체장의 선심행정과 무리한 사업추진, 이에 따른 예산낭비와 재정부실 문제가 심각하다. 행정자치부에 따르면 3월말 현재 전국 지자체의 부채는 18조원이 넘고 연간 이자 부담만도 1조원에 이른다. 서울 부산은 재정자립도가 80%를 웃돌지만 강원 충남북 전남북 경남북 제주 등은 18∼40%에 불과한 실정이다.

그런데도 판공비는 펑펑 쓴다. 일부 광역단체는 재정자립도가 계속 떨어지고 있는데도 올해 단체장 판공비를 지난해보다 배 이상 많게 잡았다. 게다가 대부분의 자치단체가 판공비 사용내용을 구체적으로 공개하라는 주민들의 요구를 계속 무시하고 있다.

지나친 지역이기주의도 심각한 문제다. 원자력발전소 쓰레기처리장과 같은 혐오시설은 우리 동네에 둘 수 없다는 님비(NIMBY) 현상과 고속철도 역사 등은 꼭 우리 동네에 들여놓아야 한다는 이른바 핌피(PIMFY) 현상이 더욱 뚜렷해졌다. 지역간의 선의의 경쟁을 통해 국가발전을 꾀한다는 지방자치의 대전제가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지방의회도 주민의견 수렴과 집행기관 감시라는 본연의 임무를 기대한 만큼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는 게 우리의 판단이다. 상당수 의원들이 주민대표로서 성의와 자질이 부족한 것은 물론 일부 의원들은 자신의 신분을 개인사업의 ‘보호막’쯤으로 여겨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경우도 적지 않았다. 또 일부 지방의원들은 정치적 입신에 더 큰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게 총선과정에서 입증됐다.

이 같은 여러 가지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주민의 관심과 적극적인 참여가 필수적이지만 그에 앞서 제도적으로 보완해야 할 점도 많다. 지방자치단체가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선 중앙정부의 권한을 지방정부로 대폭 이양, 확실한 분업체계를 갖춰야 한다. 정부도 지난해 중앙 행정권한의 지방이양 촉진 등에 관한 법률을 제정했지만 관련 법령 또는 조례의 정비 등 후속조치가 늦어지고 있다.

각 분야의 수도권 집중 현상을 해소해 실질적인 지방분권화의 기틀을 만드는 것도 장기적으로 정부가 해야 할 일이다. 서울에 가지 않아도 일이 되고, 내 고향이 서울보다 더 살기가 좋다는 말이 나오도록 하면 그것으로 우리나라의 지방자치는 성공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