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토요 쟁점토론]약사법 재개정

입력 | 2000-06-30 19:28:00


《약사법 재개정을 놓고 의약계가 날카롭게 대립하고 있다. 대한의사협회는 △대체조제 때 의사의 사전동의를 구하고 △일반의약품을 낱개로, 두 가지 이상 섞어 팔 수 없게 하며 △조제기록부 작성을 의무화하는 내용의 약사법 개정을 청원했다. 약사회는 의사협회의 요구가 소비자의 편익을 무시함으로써 의약분업의 성공적인 정착을 방해하려는 것이라며 반대하고 있다》

▼찬성▼

작년 12월 국회에서 개정된 약사법은 의와 약이 역할을 분리해서 약물의 오남용을 막고 나아가 국민의 건강을 증진시키겠다는 근본취지를 퇴색시키고 있다.

개정 약사법 중 대표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이 의사의 진료권을 침해하는 약사의 임의조제(약사법 제39조 2호)와 대체조제(약사법 제23조의 제1항)에 관한 조항들이다.

개정약사법 제21조 제4항에는 약사는 의사의 처방전에 의해 전문의약품과 일반의약품을 조제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제76조에는 이를 위반하는 자는 1년 이하의 징역 혹은 3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그러나 의약품의 개봉판매 금지를 규정한 약사법 제39조는 단서규정을 두어 예외적으로 개봉판매를 허용하고 있는 바 제2호 “약국 개설자가 일반의약품을 직접의 용기 또는 직접의 포장상태로 한 가지 이상을 판매하는 경우”가 임의조제를 가능하게 하는 근거가 되고 있다.

이는 약사에 의한 불법조제를 합법화하는 의약분업의 근본취지를 뿌리째 흔드는 엄청난 해악조항이다.

다시 말해서 의사는 진료 후 처방만 할 수 있는데 반하여 약사는 처방전에 의한 조제와 더불어 일반의약품을 가지고 의약분업 전의 관행대로 임의조제를 할 수 있는 길을 열어두고 있다는 말이다. 약물의 오남용을 막고 의약인의 전문성을 존중한다는 의약분업의 근본취지와는 다른 방향으로 설계된 법이므로 당연히 삭제되어야 한다는 게 의료계의 입장이다.

다음으로 문제되는 것이 대체조제이다. 개정약사법 제23조의 2 제1항은 성분 함량 및 제형이 동일한 경우에 한해서 다른 의약품으로 대체하여 조제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무분별하게 대체조제가 이뤄질 경우 의사의 처방전이 예상하고 있는 치료효과가 발생하지 않거나 오히려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

개정약사법 제23조의 2 제2항에 의하면 대체조제를 한 약사는 그 내용을 의사에게 사후 통보하게 되어 있어 이는 의사가 의약품을 적절히 통제할 수 있는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시킨 것이나 마찬가지다.

마지막으로 약사의 조제 및 판매기록부 작성문제가 있다. 의사는 의료행위를 할 때 반드시 진료기록부를 작성하고 일정기간 이를 보관토록 하여 의료행위와 관련된 각종 문제가 발생하면 그 책임여부를 명확하게 하고 있는 반면 약사의 경우에는 이와 같은 조제기록부 등의 작성 및 보관의무가 부과되어 있지 않다.

약화사고 발생시 책임소재를 명확히 하고 관련된 사람의 이익을 보호하며 약사의 의약품 조제 혹은 판매 때 보다 주의를 기울이도록 유도한다는 측면에서 약사에게도 의사와 같은 조제기록부 등의 작성 및 보관 의무를 지도록 할 필요가 있다.

이처럼 현행 약사법에는 의약분업의 본 뜻에 위배되는 독소조항이 많다. 여야 영수간에 7월 임시국회에서 약사법을 개정하기로 합의한 만큼 제대로 된 법이 마련되기를 기대해 본다.

조정제(의사협회 정책이사)

▼반대▼

국민 생명을 위협하던 폐업투쟁의 결과 약사법을 재개정하는 문제가 대두됐다. 의사단체의 힘에 굴복한 나쁜 선례를 남겼을 뿐만 아니라 재개정하자는 내용을 들여다보면 도대체 이것 때문에 그 난리를 피웠느냐는 반문을 피할 수 없게 되어 있다. 의사의 권리를 위해 국민이 희생하고 비용부담을 높이라고 돼 있기 때문이다.

재개정의 쟁점은 약을 낱알로, 또는 두 가지 이상 판매하지 못하도록 하라는 것과 대체조제시 의사의 사전동의를 받으라는 것이다.

두 가지 모두 작년 5월 시민단체와 의사협회, 약사회가 합의할 때 깊게 논의된 사항이고 11월 국회에서 논란 끝에 입법된 것이다.

낱알 및 혼합판매 금지 주장은 처방전 없이 살 수 있는 일반약 해당사항으로 이른바 ‘임의조제’를 내세워 한번에 두 종류 이상 낱알로 사면 조제가 되니 이를 금하자는 것이다.

만일 이대로 된다면 훼스탈이나 게보린을 몇 십알씩 포장 상태로 사야 하고 그것도 한 종류 이상 사지 못하게 하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국민은 1000원이면 해결될 일을 1만원 이상 들여야 한다는 것이고 필요한 양만큼 살 자유도 없다는 결과가 된다.

후자의 사전동의 문제는 사실상 대체조제를 금지하자는 주장이다. 현행법은 성분과 함량이 똑같은 약을 대체할 수 있게 하되 약효가 같다는 정부의 검증시험에 합격한 약에 한해서 허용돼 있다. 대체조제를 금지하면 약국마다 2만종이 넘는 약을 비축해야 하기 때문에 이런 현실을 감안한 것이다. 이 시험방법도 의사측과 시민단체가 참여한 위원회에서 일본 후생성의 기준을 준용하기로 합의 결정돼 그 합의에 따라 시행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에 와서 믿을 수 없다는 주장을 되풀이하고 있다. 이 배경에는 회사마다 약효가 다르다는 지극히 독선적 편견이 섞여 있지만 제제기술이 발달된 지금에는 통하지 않는다. 세계 각국이 대체조제 범위를 넓히고 있고 유럽은 상품명이 아닌 성분명으로 처방하는 국가가 대부분이다.

의사측 주장은 상품명 선택권을 쥐고 제약회사를 지배하려는 뜻에 다름 아니다. 때문에 약사회에서는 약효가 다르다는 입증을 하면 대체불가 목록으로 지정하자고 제안했으나 대답이 없었다. 의사의 권위만 내세울 뿐 객관적 근거를 제시하지 못한 것이다. 의사의 사전동의는 의사와 전화소통이 쉬울 때나 가능하지만 서로 바쁠 때는 이 또한 불가능한 일이다. 낮에 처방을 받아 퇴근 후 집 근처 약국에서 조제한다면 의사가 퇴근 후라서 조제를 못하거나 똑같은 약을 두고도 다른 약국을 찾아가야 한다.

조제기록부 작성은 약국이 처방전을 보관하도록 돼 있기 때문에 필요하지 않으며 일반의약품 판매를 일일이 기록하는 것은 약사와 소비자를 귀찮게 할 뿐이다.

이번 개정요구는 국민 편익보다 의권(醫權)을 더 중요시했다는데 문제가 있다. 의사보다 국민 입장에서 의약분업 정책이 완성되기를 바란다.

신현창(약사회 사무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