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에 다시 속편 제작 붐이 일고 있다.
지난달 그동안 속편제작 참여를 거부해오던 아널드 슈워제네거가 '터미네이터3'로 다시 돌아오겠다고 발표한 뒤 불혹의 나이에 이른 샤론 스톤도 이에 질세라 '원초적 본능 2'를 들고 나왔다. 뒤이어 '인디아나 존스'와 '크로커다일 던디', '쥬라기 공원’까지 속편제작 발표가 봇물터지듯 쏟아지고 있다.
이러한 속편 제작 붐의 시원은 물론 할리우드의 예지자 조지 루카스가 지난해 다시 들고 나타난 '스타워즈:에피소드1’에 있다. 할리우드에서 속편의 흥행성을 담보하는 제작연한은 평균 3년. 하지만 스타워즈 시리즈 3편 이후 16년만에 난데없이 등장한 이 영화는 이런 속설을 무색하게 할 만큼 미국 개봉 첫날 최대 수입의 기록을 세우는 대성공을 거뒀다. 현재 할리우드의 관심도 지난달말 촬영에 들어간 '∼에피소드2’에 온통 쏠려있다.
한동안 서사극 복원에 치중하던 할리우드가 갑자기 과거의 블록버스터들을 '무덤’속에서 불러내는 이유는 무엇일까. 인간 게놈의 발표에 때맞춰 자기복제의 매혹에 다시 도취된 것일까.
우선은 돈벌이가 될 새로운 이야기를 창조하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유력하다. 서사극의 부활은 ‘글래디에이터’를 빼고는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했고 돈벌이가 된 영화들은 ‘미션 임파서블2’처럼 이전 영화의 등장인물과 플롯의 변주에 지나지 않게되자 아예 홍보나 마케팅이 손쉬운 속편 제작에 발벗고 나섰다는 설명이다.
이와 관련, 최근 씨그램사로부터 유니버설영화사를 사들인 프랑스의 비방디 그룹이나 20세기폭스사를 손에 넣은 호주의 뉴스 코퍼레이션 등 해외자본의 보수적 성향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투자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창조적인 새로운 이야기에 큰 돈을 거는 위험부담보다는 익숙한 이야기에 승부를 걸려 한다는 얘기다.
배우들에게 초점을 맞추면 새로운 해설도 가능하다. 아널드 슈워제네거나 샤론 스톤 같은 스타들이 내리막길에 접어들면서 옛 영광을 되찾기 위한 나르시즘의 향수에 젖어들었다는 것. 영화평론가 조혜정씨는 “‘원초적 본능’이후 자신의 이미지가 섹스심볼에 머무르는 것을 바꾸기 위해 여러 연기변화를 시도했다 실패한 샤론 스톤이 자신이 가장 잘했던 영역을 통해 대중의 인기를 다시 확인하고 싶어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정치적 보수주의도 옛 이야기의 부활을 낳았다는 분석이다. 미국경제가 10년이상 장기호황을 누리면서 팽배해진 보수적 분위기가 익숙한 이야기, 안정된 이야기를 희구하는 심리상태를 만들었다는 지적이다. 이들 영화들이 대부분 80년대 보수적인 레이건시대에 등장했다는 점에서 다시 공화당의 집권가능성이 점쳐지는 요즘 시점의 정치적 상황과도 맞물린다. 하지만 이런 속편제작의 열풍은 상명대 조희문교수의 지적처럼 “결국 창조적 원천의 고갈과 똑같은 이야기의 되풀이라는 악몽의 시작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결코 반갑게 바라볼 수만은 없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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