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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깊이듣기]'명곡과 제목' 뒷얘기

입력 | 2000-07-05 18:22:00


▶ 차이코프스키 '비창'교향곡 1악장, 베토벤 피아노곡 '비창'과 닮은꼴

2주전 ‘명곡과 제목’에 관한 짧은 생각을 써보았는데 몇몇 독자들이 읽은 느낌을 전해왔다. 몇분은 “잘못 붙여진 명곡 제목에 대해서도 한번 써보았으면”이라는 의견을 피력했다.

잘못된 제목을 따지자면 베토벤의 피아노협주곡 5번을 ‘황제’로 부르는 것이 그랑프리를 차지하지 않을까 싶다. ‘황제’라는 제목은 ‘곡의 장엄한 위풍이 협주곡의 황제라 할 만한 풍모를 갖췄다’며 일부 호사가들이 붙인 이름. 그러나 정작 베토벤은 군주제를 혐오했던 나머지 교향곡 3번의 표지에 나폴레옹에게 보내는 헌정사를 썼다가 나폴레옹이 황제로 등극하자 표지를 박박 찢어버리기도 했으니 ‘황제’라는 제목을 좋아할 리 없다.

이 문제는 교향곡 5번 ‘운명’과도 관련이 있다. 최근 지휘자 존 엘리엇 가디너는 ‘교향곡 5번의 주제가 프랑스 민중들의 혁명가와 유사하다’는 가설을 제기했다. 이 가설을 받아들인다면 ‘운명 교향곡’은 오히려 ‘혁명 교향곡’에 가깝다.

‘운명’이라는 제목은 베토벤의 제자인 신틀러가 “스승께서 서두의 동기를 연주하며 ‘운명이 문을 두드린다’고 하셨다”고 전한 말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그러나 최근의 베토벤 전기작가들은 신틀러가 주변에 전한 베토벤의 면모가 터무니없이 왜곡돼있다고 분석한다. 최근대부분의 음악회 프로그램과 음반 표지에서 ‘운명’이라는 제목은 삭제되고 있다.

약간 다른 문제이지만 제목 이야기를 하면서 차이코프스키의 ‘비창’교향곡을 빼놓을 수는 없다. 이 제목은 작곡가의 동생인 극작가 모데스트 차이코프스키가 붙인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제목을 달지 못해 고민하는 형에게 모데스트가 “비창 (Pathxtique)는 어때?”라고 묻자 형이 “브라보 모데스트, 그래 비창이다”라며 기뻐했다는 전언이다. 그러나 기자는 이 말에 강력한 의심을 품고 있다. 1악장 서주와 바이올린의 제1주제에 나타나는 음형이 베토벤 피아노소나타 ‘비창’의 서두와 너무도 닮았기 때문이다. 때문에 기자는 차이코프스키가 애초부터 ‘비창’이라는 제목을 염두에 두고 있었던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독자 중에는 “슈베르트의 교향곡 9번에는 그레이트(거대)라는 제목이 이미 있지 않은가”라는 지적을 해 주신 분들도 있다. 사실 이 작품은 흔히 ‘그레이트’라고 불려 왔다. 일반적인 교향곡의 길이가 30분 남짓하던 시대에 50분이 넘는 작품을 썼으니 당대 사람들이 ‘그레이트’라고 부른 것도 무리가 아니다. 그러나 80분이 넘는 브루크너와 말러 교향곡이 즐비한 오늘날 ‘그레이트’라는 제목은 아무래도 어색하다. 그래서인지, 음반과 연주회 프로그램에 이 제목을 넣는 일은 점차 드물어지고 있다.

gustav@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