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 후치다(35)는 올 3월 한국 관광길에 올랐다가 받은 불쾌감을 지우지 못하고 있다. 서울 청량리에서 경기 남양주시 서울리조트를 찾아가는데 지명(地名) 위주로 된 도로표지판이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기 때문. 지도까지 들고나섰지만 교차로에서 어느 쪽으로 가야할지 알 수 없는데다 한글로만 적혀 있어 일본어로 표기된 지도 역시 무용지물이 됐다.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후치다처럼 도로표지판을 알아볼 수 없다는 외국인 관광객의 신고는 지난해 624건의 전체 관광불편 신고 중 10%를 차지했다.
영국에서는 도로표지판이 우리나라와 달리 지명이나 주요건물을 표시하지 않고 각 도로를 숫자코드로 나타내고 있지만 훨씬 찾아가기 쉽게 돼 있다. 예를 들어 40번 고속도로라면 M40, 40번 국도는 A40 등으로 표기돼 있어 연계지점을 쉽게 찾을 수 있다. 또 어느 곳이든 분기점 1마일과 0.5마일 전에 표지판이 설치돼 운전자들이 분기점 위치를 금세 알아차릴 수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도로표지판만으로는 목적지를 찾아가기 어렵다. 이모씨(30)는 최근 자유로에서 수원까지 가기 위해 판교∼구리간 고속도로 표지를 보고 진입했으나 어느 램프에서 나가야 수원인지 도무지 알 수 없어 애를 먹었다 한다. 램프가 나타날 때마다 긴장하며 표지판을 봤지만 수원표지가 나왔을 땐 이미 램프를 지나친 뒤였다. 분기점 표지가 불규칙하게 불쑥불쑥 나타나는 바람에 표지판을 보기가 어려웠던 것.
박용훈(朴用勳·39)교통문화운동본부 대표는 “표지판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설치돼 있지 않은데다 방면을 표기하던 표지판이 갑자기 건물표지판으로 뒤바뀌는 등 도로표지판이 일관성을 잃고 있어 운전자에게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인 로안 스미스(32)는 지난달 3일 행주대교에 진입하려는 순간 두개의 표지판이 제각각 행주대교 방면을 표시하고 있어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한다. 한글표기 밑에 영어로 ‘Haeungju Brdg’라고 적혀 있었지만 한쪽은 좌회전, 다른 쪽은 직진으로 표시돼 있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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