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에서의 남북정상 상봉은 한반도의 ‘통일’이 아니라 분단의 스테이터스 쿼(status quo·현상)를 순안공항의 붉은 외교용 카펫을 밟은 국가원수의 수준에서 공식화하였다. 6·15공동선언은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두 국호를 명기하고 양측의 최고위층이 서명함으로써 ‘한 민족 두 국가’라는 신라 통일 이후 한반도에 드물게 보는 복수 국가체제의 실재를 사실(de facto)의 차원에서만이 아니라 법적 정당성(de jure)의 차원에서 다시 한번 확인한 공기록이 되었다.
특히 6·15공동선언의 제2항은 한반도에서 이같은 복수국가체제가 앞으로도 상당기간 존속할 것임을 시사하고 있다. 이러한 6·15공동선언을 우리는 왜 지지해야 하는 것인가?
남북정상회담이 개최된 사흘간과 그를 전후한 열흘 동안 온나라의 신문과 방송의 ‘평양의 극진한 환대’에 관한 바람몰이식 집중보도 때문에 우리 모두는 남북관계의 미래에 대해서 갑자기 장밋빛 환상을 갖게 된 때문일까.
평양은 북한의 수도이지만 북한의 전부가 아니다. 서울도 물론 남한의 전부는 아니지만 남한의 현실을 대표하고 있다. 공해, 난개발, 교통난 등 남한의 문제점들을 축약하고 있다. 그러나 평양은 북한의 현실을 대표하고 있지 않다. 북한이 안고 있는 극도의 식량난과 에너지난을 축약하고 있지 않다. 평양은 북한에서 예외적인 도시이다.
남한에서는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시골에서 서울로 전입해와서 살 수 있다. 북한에는 그러한 거주지 선택의 자유가 없다. 우리 대표단이 방북해서 멀리서건 가까이서건 만나 본 사람들이란 오직 평양의 주민들이요, 평양의 주민이란 북한체제에선 ‘선민(選民) 집단’이다. 그 평양주민을 북한의 ‘보통사람’으로 본다면 단견(短見)이다.
평양에서 돌아온 뒤 학식과 덕망을 갖춘 일행 중의 네 분이 공영TV의 심야방송에 나와 사회자의 부추김에 따라 한시간 가량을 주로 평양에서 대접받은 음식 맛에 대한 칭찬을 침이 마르도록 늘어놓는 것을 보았다.
우리는 대통령을 수행해서 방북한 학식과 덕망 높은 분들만이 아니라 남한의 보통사람들도 어서 누구나 맛있는 평양냉면과 곰의 무슨 요리인가를 먹기 위해서 공동선언을 열렬히 환호하고 지지하는 것인가? 아니다.
전세계를 향해서 식량원조를 구걸하고 있는 북한의 평양 밖에 사는 보통사람들(그들이 만일 평양음식 예찬에 침을 흘리고 있는 남한의 TV방송을 시청했다면…), 바로 그 허기진 북녘동포들이 조금이라도 덜 배고프게 살길을 열어 놓으리라고 기대하기 때문에 우리는 6·15선언을 지지하는 것이다.
평양에서 남북정상이 상봉한 사흘간은 역사적인 나날이요, 민족의 감성을 뜨겁게 달아 올린 날들이었다. 그러나 평양이 북한의 전부가 아닌 것처럼 올 6월의 사흘 동안이 한국현대사의 전부는 아니다.
물론 적대했던 남북의 두 정상이 반세기만에 만나 악수하고 환담하고 포옹까지 하는 광경을 본다는 것은 감격스러운 일이다. 동족끼리의 분리 이산, 동족끼리의 대립 상잔이라는 참을 수 없는 비극의 현대사를 살아온 우리 누가 그 광경을 보고 감동하지 않을 수 있다는 말인가.
그러나 한 차례의 포옹과 순간의 감동이 적년(積年)의 난제들을 일거에 해결해 주는 것은 결코 아니다. 평양의 사흘로 6·25전쟁의 3년이 별안간에 해소되는 것도 아니고 아웅산 폭탄테러사건이 소멸되는 것도 아니다. 독일의 빌리 브란트 전총리가 즐겨 쓰던 서양 속담에 “하느님조차도 한번 일어난 일은 없었던 것으로 할 수는 없다”는 말이 있다.
우리는 6·25전쟁도 아웅산도 다 잊어버렸기 때문에 6·15공동선언을 지지하는 것은 아니다. 더욱이 거기에 서명한 사람이 반드시 국내의 소위 진보파 인사들이 저주하는 ‘냉전주의자’가 아니라고 믿기 때문에 공동선언을 지지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공동성명에 서명한 평양의 국방위원장이 불쌍한 북한 동포의 명운을 좌우할 수 있는 유일한 권력자이기 때문에 그가 서명한 약속의 선언문을 지지하는 것이다. 그리고 남쪽의 서명자는 그를 죽이려 한 자도 용서한 유일한 국가원수이기 때문에 그가 권능을 행사한 민족화해의 선언문을 지지하려는 것이다.
최정호(울산대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