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메이션 영화 '타이탄 A.E.’의 시사회장. 상영이 끝나고 시사회장에 불이 켜지는데 자리에서 일어난 사람들이 모두 어안이 벙벙하다는듯한 표정을 짓고 있다. 그럴 법도 하다. 불과 95분만에 지구가 폭파되어 멸망했다가 다시 만들어졌으니 왜 안 그렇겠는가.
20세기폭스사의 애니메이션 ‘타이탄 A.E.’는 1시간반동안 롤러코스터를 탄 것마냥 ‘쾌속’적인 시각적 즐거움을 주는 SF 영화다. 누런 밀밭이 바람에 펄럭이는 도입부부터 재건된 지구가 어슴프레한 햇살 속에 땅을 굳혀가는 마지막 장면까지 배경은 언제나 더없이 장대하고, 그 위를 미끄러져 가는 주인공 캐릭터들은 사소한 특성들은 다 털어내버린 듯 굵고 날렵하다.
디즈니에서 독립해나와 ‘아나스타샤’를 만들었던 제작자 돈 블루스와 게리 골드만의 말마따나 “록과 블록버스터에 익숙한 10대들이 즐길만한” 영화. 욕설이라곤 한 마디도 할 줄 모르는 주인공만 나오는 디즈니 애니메이션과는 느낌이 천양지차다.
‘타이탄 A.E.’의 벤치마킹 대상은 오히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들. ‘아마게돈’ ‘파이널 임팩트’의 애니메이션 판이라고 해도 좋다. 줄거리도 별반 다르지 않다. 악당들에 의해 지구가 폭파돼 사라져버린 서기 3028년. 떠돌이 인류의 희망은 지구를 다시 만들어낼 신비한 힘을 가진 우주선 ‘타이탄’을 찾는 것 뿐이다. 청년 카일은 자신이 ‘타이탄’을 찾아낼 결정적인 열쇠를 갖고 있음을 알게 되고 우주를 종횡무진 누비는 모험은 시작된다. ‘타이탄 A.E.’의 A.E.란 After Earth, 즉 지구가 멸망하고 난 뒤의 역사를 가리키는 것.
2차원 셀 애니메이션 기법과 3차원 컴퓨터 그래픽을 섞어서 사용한 것이 눈에 띈다. 배경은 모두 3차원이고 주인공들은 2차원이다. 100% 3차원 애니메이션을 계획했다가 이렇게 ‘신기한’ 형태의 절충으로 바뀌게 된 것은 자금과 제작시간의 부족 때문.
문제는 관객은 그런 사정을 일일이 고려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얼음행성에서의 숨바꼭질 장면이나 카일이 처음으로 우주선을 모는 장면 등 몇몇 숨막히는 볼거리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전체적으로 캐릭터와 배경이 겉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보다 더 아쉬운 것은 줄거리의 짜임새. ‘어떻게 타이탄을 찾은걸까’ ‘타이탄은 어떻게 지구를 되살릴까’ 등을 궁금해하지 않겠다는 자세로 보면 아무 문제가 없지만 조금이라도 궁금해하기 시작하는 순간 머리 속이 복잡해진다. 카일의 목소리를 맡은 맷 데이먼이나 여주인공 아키마를 맡은 드류 배리모어의 무난한 연기도 이 점만은 덮어주지 못한다. 오히려 악역 코르소를 맡은 빌 풀만이야말로 영화에서 가장 매력적인 인물로 생동감을 더한다.
하지만 ‘타이탄 A.E.’는 영화내내 흘러나오는 노래만으로도 제 값을 한다. 알라니스 모리세트 등 미국 록계 여러 스타들의 앨범을 제작했던 글렌 발라드가 ‘릿’ ‘파워맨 5000’ 등 일렉트로닉 계열 스타밴드들의 노래를 받아 적재적소에 삽입했다. 전체관람가. 7월29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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