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년 한해에 32개 업체가 주식을 상장했고 120건에 이르는 M&A가 일어났으며, 하루 평균 60여명의 백만장자가 새로 탄생한 곳. 바로 세계 첨단산업의 중심지인 실리콘밸리의 성적표다. 이제 실리콘밸리는 단순히 7,000여 개의 첨단기술업체들이 모여 있는 미국 샌프란시스코 인근 지역이라는 의미보다 미국 경제의 부활을 주도한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의 상징이 되었다. 컴퓨터, 반도체에서 유전공학, 인터넷에 이르기까지 실리콘밸리는 단 한번도 첨단산업의 주도권을 내주지 않을 만큼 놀라운 유연성과 창조성을 발휘했다. 과연 실리콘밸리의 이러한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저자는 산업자원부 파견관으로 3년간 실리콘밸리에 머물면서 겪었던 자신의 체험과 관찰을 바탕으로 실리콘밸리의 여러 가지 모습들을 비교적 쉽게 서술하고 있다. 저자는 전세계 벤처 기업의 요람인 실리콘밸리가 성장할 수 있었던 중요한 요인 중의 하나로 실리콘밸리를 중심으로 구축된 정교한 인프라 시스템을 강조하고 있다. 기술과 아이디어의 산실인 스탠퍼드, 버클리대를 비롯한 연구기관, 신생 기업들을 지원해주는 인큐베이터(창업보육기관), 자금을 공급하는 벤처캐피털 회사와 엔젤 투자가, 각종 경영 노하우와 회계, 법률 서비스 등을 제공하는 컨설팅업체와 법률회사 등 벤처 기업에 필요한 각종 인프라가 실리콘밸리 지역에 집중적으로 조성되어 있다. 따라서 누구나 뛰어난 기술이나 아이디어만 있다면 실리콘밸리의 인프라를 활용해 손쉽게 사업을 시작할 수 있다.
저자가 강조하는 또 다른 실리콘밸리의 성공 요인은 이곳 벤처 기업들이 공유하고 있는 새로운 기업 문화와 가치관이다. 자신의 핵심 역량을 제외하고는 전부 아웃소싱에 의존하고, 눈에 보이지 않지만 철저하게 네트워크로 사업을 전개하며, 툭하면 일어나는 M&A, 정리해고, 스카우트로 4명 중 1명 꼴로 직장을 옮기고, 24시간 격무에 시달리지만 자신의 가치에 상응하는 성과급을 받을 수 있는 메커니즘이 구축된 곳이 바로 실리콘밸리인 것이다. 사실 일찍부터 미국의 대기업들도 이러한 실리콘밸리식 인프라 시스템과 기업 문화를 자신의 기업 내부에 접목시켜 조직의 창의성과 생산성을 제고시키려고 노력해 왔다.
금융 위기와 코스닥 침체로 벤처 열풍이 한풀 꺾이기는 했지만 여전히 벤처의 불씨가 곳곳에 남아 있고 이 불씨들을 다시 지펴야 하는 것이 우리의 과제다. 이 책에서도 언급했듯이 많은 한국인들이 실리콘밸리에서 성공을 거두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다른 시사점을 던져 주는 것 같다.
(가톨릭대 경영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