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하루종일 서울 시내 변두리 전파상을 뒤졌다. 어렵게 구한 오래된 트랜지스터 라디오를 고치기 위해서였다. 중학교 시절 삼촌이 쓰다 물려준 트랜지스터 라디오를 애지중지하며 음악을 들었던 내가 똑같은 모델의 라디오를 우연히 발견했을 때 느꼈던 설렘은 다른 사람이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요새 이런 라디오를 고치는 사람도 있나요?”
박대를 받으며 헤매던 끝에 미아리 산동네 근처의 한 전파상에서 고쳐주겠다는 ‘귀인’을 만날 수 있었다. 그 라디오에서 나오는 소리를 처음 듣는 흥분이란…. 바로 20년 전 들었던 소리와 똑같았다.
요즘은 모든 것이 디지털이란 형용사를 달아야 인정받는 디지털 세상이다. 그렇다면 디지털세상 다음은 어떤 세상이 올 것인가. 이런 궁금증을 갖는 것은 지금 살고 있는 세상의 편리함에 무언가 부족함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너무 급박하게 변화에 내몰리고 떠밀려가면서 초조함마저 느끼는….
요사이 젊은 층 중에는 게임방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사람도 있다. 사람을 직접 만나는 것보다 컴퓨터 화면을 통하여 만나는 데 익숙해져 있다. 친구들과 등산을 다니기보다는 게임방에 모여 네트워크 게임을 떼지어 하는 것을 즐겨하고 조그마한 불편함도 시대에 뒤떨어진 것으로 간주한다.
선배 세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어보면 “우리는 그들과 달라”라는 한마디로 끝내버린다. 0과 1로만 설명하려는 디지털 세상의 아이들이어서 그런가.
‘디지털 다음 세상은 어떤 세상일까? 또다시 새롭고 혁신적인 개념이 생겨날까? 아니면 다시 아날로그 세상으로 회귀할까?’
고민을 해봐도 답이 나오지는 않는다. 그래서 질문을 디지털 세상이 가지고 있는 문제는 무엇일까로 바꾸었다. 디지털 세상에 살고 있지만 아날로그 세상이 가지고 있던 소중한 가치 중에 우리가 잊어버리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인간다움이다. 전자우편은 편리하지만 종이편지의 감동이 담겨있지 않다. 인스턴트 음식도 편리하지만 정성은 담겨있지 않다. 인터넷 포르노를 보며 흥분을 느낄 수는 있지만 거기엔 설렘과 사랑이 없다.
그렇다면 신속함과 편리함이 강조되는 디지털세상 다음에는 인간다움 즉, 인간의 자주성과 자율성이 중심이 되는 세상이 되지 않을까.
편지 한 통을 정성스레 쓰고, 리모컨 대신 손으로 라디오 주파수를 공들여 맞추고, 맨발로 흙을 밟고 다녀도 시대에 뒤떨어졌다는 핀잔을 받지 않는 세상.
디지털이든 아날로그든 인간이 하나의 이데올로기에 지배받지 않고 모든 억압에서 해방되고 진정한 자유를 누리며 살 수 있는 세상을 기다려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