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나 검찰이 범죄 용의자를 연행할 때는 그 이유와 변호인의 도움을 받을 권리, 진술을 거부할 수 있는 권리 등을 반드시 알려줘야 한다. 이른바 ‘미란다 원칙’이다.
대법원은 ‘미란다 원칙’을 지키지 않고 용의자를 체포하려한 행위는 ‘정당한 공무집행’이 아니므로 이에 저항했다고 해서 ‘공무집행방해죄’가 되는 것은 아니라고 판결했다. 대법원 제3부(주심 송진훈·宋鎭勳 대법관)는 4일 공무집행방해 및 폭력, 특정범죄가중처벌법위반(도주차량) 등 혐의로 구속기소된 한모씨(39)에 대한 상고심에서 검찰의 상고를 기각, 공무집행방해와 폭력 부분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대법원은 나머지 혐의에 대해서만 유죄를 인정해 징역8월을 선고했다.
▽사실관계〓 인천 중구 항동 신흥파출소 김모 경장과 김모 순경은 지난해 2월7일 오전 1시30분경 파출소에서 500m 떨어진 삼익아파트 앞에서 교통사고 용의자 한씨를 발견했다.
김경장 등은 한씨를 붙잡아 순찰차에 태우려 했으나 한씨는 범행을 부인하며 거부했다. 경찰이 한씨를 강제로 연행하려는 과정에서 한씨가 거세게 저항, 두 경찰관이 넘어지면서 전치 2주씩의 상처를 입었다. 김경장과 김순경은 결국 한씨를 연행했으나 ‘미란다 원칙’을 지키지 않았다.
▽법적 판단〓1, 2심 재판부는 한씨가 현행범이 아니므로 경찰이 영장없이 체포를 시도한 것 자체가 불법이라고 보았다. 대법원은 한씨가 범죄에 사용했던 교통사고 차량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형사소송법 제211조 2항의 ‘준(準)현행범’에 해당해 영장없이 체포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영장없이 긴급하게 체포하는 경우에도 헌법 12조 5항과 형사소송법 72조에 따라 체포 또는 구속의 이유와 변호인의 도움을 받을 권리가 있음을 알려주고 변명할 기회를 주어야 한다고 판시했다. 대법원은 “이같은 고지는 체포를 위한 실력행사에 들어가기 전에 해야하는 것이 원칙이며, 달아나는 피의자를 쫓아가 붙들거나 실력으로 피의자를 제압하는 경우에는 붙들거나 제압하는 과정에서 또는 그 직후 지체없이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법원은 ‘미란다 원칙’을 지키지 않고 한씨를 연행하려 한 것은 적법한 공무집행이 아니므로 한씨의 저항행위는 ‘공무집행방해’가 아니라 ‘정당방위’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경찰관 등이 범죄 용의자를 체포할 때 진술거부권과 변호인 선임권 등의 권리가 있음을 반드시 알려줘야 한다는 원칙. 1963년 미국 애리조나주 피닉스에서 성폭행 혐의로 체포된 어니스트 미란다에 대한 재판에서 판례로 확립됐다. 당시 21세였던 미란다는 범행을 자백했지만 연방대법원은 66년 이같은 권리가 무시됐다는 이유로 5대4의 다수결로 무죄판결을 내렸다. 우리 헌법과 형사소송법은 ‘체포 또는 구속의 이유’를 알려주도록 규정, 약간의 차이는 있으나 근본정신은 같은 것으로 해석된다. 미국 대법원은 지난달 26일 수사관이 미란다 원칙을 통보하지 않은 경우에도 자백에 임의성이 있다면 증거로 채택할 수 있도록 한 범죄통제법 3501조 규정은 위헌이라고 판결, 미란다 원칙의 유지를 재확인했다.
서울경찰청은 95년 4월 일명 ‘미란다 카드’를 제작해 일선 경찰관들에게 배포, 용의자 체포 때 반드시 읽어주도록 했으나 흐지부지됐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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