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여름 헐리우드 여름 블록버스터 전쟁은 뭔가 허전하다. 주력 품목인 애니메이션이 고전했기 때문이다. 영화의 미래가 걸린 디지털 테크놀로지의 눈부신 진보를 담았음에도 불구하고 흥행성적은 부진을 면치 못한 것. 무엇이 문제였을까.
미국에서는 디즈니의 디지털 애니메이션 와 고전 애니메이션을 디지털로 복원해 아이맥스로 상영한 을 비롯해 폭스의 미래 환타지 와 드림웍스의 가 각축을 벌였다. 와 두 편을 내놓은 디즈니가 선전했고 는 저조했지만 그렇다고 큰 성공을 거둔 영화는 없다.
가장 먼저 개봉한 은 아이맥스 극장에서 4개월 장기 상영으로 이미 5천만 달러를 벌어들였고 6월에는 35 미리로 재개봉했다. 는 5월 19일 개봉해 1억 2천만 달러 이상을 벌었지만 제작비에 비하면 만족할만한 성적은 아니다. 초상이 난 쪽은 다. 디즈니 애니메이션에 완전히 당했기 때문이다.
의 공동 감독인 돈 블루스에 따르면 "디즈니가 의 개봉 전후 시기에 와 을 샌드위치로 개봉해놓아 장기간 극장을 잡기가 어려웠다"고 토로했다. 더욱이 는 영국의 아드만이 작업한 드림웍스의 클레이 애니메이션 이 연이어 개봉함으로써 진퇴양난에 빠졌다.
는 9천만달러를 쏟아 붓는 총력전으로 디즈니에 도전했지만 2천만 달러도 회수하지 못해 폭스의 애니메이션 스튜디오가 폐쇄되고 말았다. 드림웍스의 는 9천만 달러를 들여 5천만 달러 정도를 벌어 저조한 성적에 그쳤다. 올 여름 할리우드 애니메이션의 각축장에선 절대강자가 없었지만 두 편으로 그럭저럭 수지를 맞춘 디즈니의 선전이 돋보인다.
그렇다고 올해 헐리우드산 애니메이션이 지지부진했던 것일까. 그렇지는 않다. 눈부시게 진보한 디지틀 테크놀로지를 선보였기 때문이다. 할리우드는 내용과 캐릭터의 개발보다는 전통적 기법과 디지털의 결합에 주력하고 있다. 현란한 이미지와 사운드로 탄생한 새로운 기술성과는 관계자들조차 경악시켰으며 디즈니가 독점했던 애니메이션 시장에 경쟁자들이 가세함으로써 기술 경쟁에 가속이 붙었다.
그러나 디지털이 과연 영화의 미래를 열어 줄 것인가? 최근 개봉한 의 성공은 그런 점에서 시사적이다. 관객이 아드만 스튜디오의 수공업 애니메이션에 열광하는 것은 올해 애니메이션 각축전이 남겨준 생각거리다.
국내 개봉에서 왕좌를 차지할 강력한 후보작은 디즈니의 다. 매년 단골손님처럼 찾아오는 '디즈니 표'라는 프리미엄을 업은 디즈니의 애니메이션은 국내 관객에게 가장 인지도가 높다. 의 승리를 예상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기획단계를 포함해 무려 10년 동안 공들여 2억 달러 가까운 제작비를 투여한 는 '규모'에서 여타의 애니메이션을 압도한다. 텔레비전 애니메이션을 거쳐 스필버그와 장편 공룡 애니메이션을 공동 연출한 랠프 존닥이 스토리를, 에서 작업한 에릭 레이톤이 애니메이션을 맡았다. 와 로 이미 입증된 디즈니 3-D 기술의 정점을 보여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는 디즈니의 새로운 디지털 스튜디오에서 만든 첫 번째 영화다. 마술처럼 스크린에 나타난 중생대 거대한 공룡들의 자유로운 움직임과 얼룩진 회갈색 피부가 생생하게 살아 숨쉰다. 어린이들이 꿈과 희망 '공룡'이 등장하기 때문에 유, 소년과 젊은 층 모두에게 어필할 수 있다는 것도 큰 장점이다. 나이든 관객에게 공룡이 얼마나 매력적일지는 미지수지만.
로저 에버트 같은 '나이 든 평론가'는 이 영화가 "너무 실사처럼 보여서 마치 '내셔널 지오그래픽' 자연 다큐멘터리를 보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만큼 생생하다는 것이다. 어차피 타겟이 명확하기 때문에 중년층을 의식할 필요는 없지만 다른 애니메이션보다 비슷한 시기에 개봉하는 블록버스터 를 의식해야 할 듯.
의 뒤를 따를 영화로는 드림웍스의 가 꼽힌다. 의 가장 큰 장점은 이야기가 흥미롭다는 것. '타임'지의 저널리스트 찰스 솔로몬은 "근래의 애니메이션들이 허약한 이야기로 흥미를 떨어뜨리고 있지만 애니메이션의 생명은 이야기와 캐릭터"라고 말했다.
이야기의 재미보다는 깜짝 놀랄 기술력으로 승부를 보겠다는 경향을 경계한 말이다. 는 황금의 도시 엘도라도를 찾아 떠나는 두 젊은이들의 여정을 따라 소소한 에피소드들이 잔재미를 주면서 모험과 로맨스를 펼친다. 다만 스토리가 어린이들 보다는 젊은이들에게 흥미를 준다는 것이 관객층을 제한할 것으로 보여 악재로 작용할지 모른다.
스필버그의 애니메이션에서 의 랠프 존닥과 공동 작업한 에릭 베게론과 , , 의 돈 폴의 공동 작업도 믿음을 준다. 케빈 클라인과 케네스 브래너가 황금의 땅을 찾아 나선 젊은이로 목소리 출연한다. 실제로 평론가 딘 키쉬는 "가 디즈니 애니메이션에 가깝게 다가간 성취"를 보였다고 평가했다.
영화 외적으로도 는 의 한 달 후를 개봉시점으로 잡고 있기 때문에 정면대결을 피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물론 비슷한 시기에 와 와 대결하지만 에 비하면 손쉬운 상대다.
두 편에 비해 의 전망은 밝지 않다. 20세기 폭스가 야심을 가지고 내놓은 작품이지만 미국에서의 흥행실패로 폭스의 애니메이션 스튜디오를 문닫게 한 역적이 되고 말았다. 뚜렷한 이야기가 없다는 것과 분위기가 어두운 것이 패인으로 거론되고 있다.
스토리 보다는 미래 우주공간의 강력한 비주얼로 승부하겠다는 전략을 세웠으나 자충수를 둔 셈이다. 이런 사정은 국내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애니메이션이 그림으로 먹고 들어간다지만 이야기에 약점이 있는 영화가 성공한 사례는 드물다는 것을 상기할 때 고전이 예상된다.
의 돈 블러스와 게리 골드먼 콤비에 데이빗 커쉬너가 합류했다. 배경은 컴퓨터 3-D로 인물은 수작업을 했지만, 배경과 인물이 주는 느낌이 차이가 커 어색하다는 평가다. 맷 데이먼과 드류 배리모어가 목소리 연기를 맡았다.
애니메이션 디렉터인 사이먼은 "가 저패니매이션에 가까운 영화"라고 자랑했지만 지구 멸망 후 3028년에 벌어지는 어두운 미래 이야기가 줄 수 있는 매력은 크지 않을 것이다. 수입사 측에서도 불확실한 보다는 비슷한 시기에 개봉하는 의 홍보에 주력하고 있다.
은 예상이 쉽지 않다. 고전 애니메이션이 유명하긴 하지만 모두 '왕년의' 얘기다. 그림에 대한 기호가 완전히 변한 요즘 관객들에게 호소력을 갖기 힘들기 때문이다. 이야기도 없이 캐릭터와 음악만으로 흥미를 자극할 수 있을 것인가도 미지수다.
디지털 기술로 사운드와 영상이 강화된 것은 큰 플러스 요인이 아니다. 아이맥스 상영을 목적으로 했기 때문에 국내 상영시 그만큼의 효과를 낼 수 없다는 것이 문제다. 미국에서도 아이맥스 개봉 후 35미리 개봉 때 관객수가 감소했다는 것이 이를 뒷받침한다.
베토벤 5번 교향곡과 거쉰의 재즈 넘버, 알 허쉬펠드의 만화와 루드비히 베멜만의 드로잉에서 영감을 받은 음악과 영상의 조화를 쉽게 이해할 수 있을까? 미학적 야심이 담긴 시도가 즐길 거리를 바라는 관객을 부담스럽게 할 수 있다.
노심초사 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풍성한 차림을 앞에 둔 관객은 즐겁다. 취향에 따라 고를 수 있고 차이를 비교하며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로저 에버트는 여름 애니메이션을 보고 "영화의 미래는 디지털 테크놀로지가 아니라 디지털 이후에 달려있다"고 확신했다.
애니메이션이 아이들의 전유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올해 국내에서 선보일 영화는 관심거리다. 날로 변하는 헐리우드의 모습이 거기 있다.
기사 제공: FILM2.0 www.film2.co.kr
Copyright: Media2.0 Inc.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