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가 문고리조차 떼어가던 시절, 식민지 백성의 귀할 것 없는 딸로 태어났다. 어미가 되어서는 6·25전쟁의 참상을 겪으며 어린 자식들을 지키기 위해 노심초사했다. 그리고 숨가쁘게 달려온 현대사의 그늘에서 인고와 희생으로 우리 가정과 사회를 지탱해온 우리네 어머니들. 그들이 바로 오늘의 60, 70대 우리 어머니요, 할머니들이다.
▼"재산나눠주느니 길에 뿌릴터"▼
아내요, 어머니라는 자리는 오직 시부모, 남편, 자식들만을 위해 모든 것을 감내하도록 강요받는 자리였다. 그것이 강요라는 인식조차도 해서는 안되었다. 그리고 이제야 비로소 ‘죽기 전에 단 하루라도 맘 편하게 살고 싶다’며 어렵사리 내민 이혼 청구. 이에 대한 사법부의 판단은 참으로 준열한 것이어서 ‘해로하시라’고 했던가. 이것이 작년 한때, 우리 사회를 잠깐이나마 흔들어 놓았던, 할머니들의 이혼 청구에 대한 법원의 답변이었다.
그 남편은 어떠했는가. 아내가 이혼 청구와 더불어 재산분할을 요구하려 하자 대학에 장학기금을 기탁했다. 평생 일궈온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지만 문제는 그런 아름다운 일이 평생 함께 그 재산을 일궈온 반려자에게 한마디 상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이뤄진 일이라는 데 있다.
바로 이와 똑같은 사례를 11일자 아침 신문에서 읽으며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을 수 없었다.
중견 기업을 운영해온 남편을 상대로 73세의 할머니가 이혼 및 재산분할 청구 소송을 내자 그 상대자인 남편은 재산분할 청구 액수와 같은 규모의 장학재단을 만드는 것으로 응답했다는 것이다.
우리 상담소에 이혼 상담을 하러 온 남편들 가운데에는 “이혼하며 아내에게 재산을 나눠주느니 길거리에 뿌려버리겠다”는 식의 말을 하는 이들이 드물지 않게 있다. 이런 말 한마디면 왜 그 아내가 도저히 함께 살 수 없다고 하는지, 왜 이혼이라는 길로 치달아야 했는지 선명하게 이해가 되곤 한다.
그래서 장학재단이라는 형식으로 많은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겠다는 뜻을 결코 순수하고 아름답게 볼 수 없는 것이다.
한편 법원은 9일 70세의 할머니가 남편을 상대로 낸 이혼 및 재산분할청구 소송에서 ‘이혼하라’는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시대의 변화와 요구에 보수적인 법원도 서서히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준 판결이었다.
오늘날 60, 70대 이상 여성 노인들의 삶이란 남편과 시집, 자녀에 대한 굴욕적일 정도의 일방적인 희생으로 점철된 것이다. 그러나 전반적인 여성의식의 성장은 이 할머니들에게도 인생에 대한 각성을 불러일으켰다. 인간이라는 자각, 자신도 귀한 존재이고 자신의 인생 또한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이 소중한 것이라는 깨달음을 늦게라도 얻은 이 여성들의 각성에 감히 한마디라도 토를 달아서는 안될 것이다.
갑갑하고 아쉬운 것은 노년기의 여성들은 늦게나마 이렇게 아름답게 깨어나고 있지만 그 상대자들은 아직도 이 변화의 기운을 읽지 못하고 과거 가부장제의 환상에서 깨어날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50년 이상을 함께 살아온 부부에게 이혼을 강요하는 것이 바로 우리 사회의 가부장적 관습이며 그 대표적인 예가 호주제다. 딸과 어머니를 제도적으로 차별하며 그로 말미암아 시대착오적인 아들 선호를 부추기고 있는 ‘호주제’를 아름다운 우리의 전통이며 미풍양속이라고 호도하는 한 우리 사회에서 가정의 평화를 지켜내기란 요원하다.
▼호주제는 제도적 여성차별▼
우리 사회의 이혼율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피치 못하게 이혼이 최선의 선택일 수밖에 없는 경우도 물론 있지만 우리 사회의 잘못된 관습이 특히 여성들에게 이혼을 권하고 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노년 이혼의 증가 또한 이러한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다.
결혼한 부부가 아름답게 평생을 함께 할 수 있으려면 잘못된 기득권에 기대어 권위 아닌 권위를 행사해온 노소(老少)를 불문한 남성들이 변해야 하고 잘못된 관습과 제도를 조속히 바로잡아야 한다.
곽배희(한국가정법률상담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