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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월드]'폴아웃' 영웅은 마을을 위해 두번 떠났다

입력 | 2000-07-13 18:46:00


디스토피아의 불길한 예언자들이 말한다. 사회는 개인을 소비하고 결국은 폐기한다. 공공의 이익, 마땅히 지켜야 할 덕목. 이런 것의 역할은 사람들에게 최면을 거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 넘어가지 않는 사람들을 격리시키는 근거도 된다.

롤플레잉 게임 ‘폴아웃’의 배경은 핵전쟁으로 파괴된 미국. 살아남은 사람들은 산속 깊숙히 묻혀있는 대피시설에 새 마을을 만들었다. 전쟁은 물론 아무 교훈도 남기지 못했다. 사람들은 여전히 권력 명예 부를 차지하기 위해 아귀다툼을 한다. 마을을 지배하는 건 갱단. 힘없는 사람은 언제 어디서 죽을 지 모른다. 살아남기 위해선 돈이 필요하고 빛나는 누런 금속을 위해서라면 못 할 일이 없다.

어느 날 갑자기 마을 장로에게 부름을 받는다. 마을의 정수시설이 고장났기 때문이다. 핵전쟁 때문에 모든 것이 오염돼 정수시설 없이는 마을이 존재할 수 없다. 지금까지 마을 밖으로 나간 사람이 아무도 없지만 이제는 그래야 한다. 마을 사람들의 생존이란 중요한 사명을 갖고 다른 마을을 찾아 여행을 떠난다.

‘폴아웃’은 자유도가 상당히 높다. 여행을 하며 부딪히는 문제를 어떻게 풀든 자기 마음이다. 어떤 선택이든 절대적으로 옳거나 선한 건 없다. 살아남기 위해 싸워야 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다른 사람이 죽는다. 만나는 사람들은 이것저것 많은 부탁을 한다.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선택은 절대 없다. 줄타기처럼 항상 누군가의 편에 서게 된다. 자기 이익을 생각하지 않는 존재가 하나 있기는 하다. 우연히 함께 다니게 되는 커다란 검은 개. 별로 강하지도 않은 주제에 자기 생각은 안하고 무조건 제일 앞으로 뛰어나와 싸운다. 그리고 절대 떼어놓을 수 없다.

마을을 구할 정수시설 부품을 구하다가 핵전쟁으로 인한 돌연변이들이 마을을 습격할 계획을 세우고 있음을 알게 된다. 적의 기지를 뚫는 과정에서 개는 쓰러진다. 하지만 마을을 구할 수 있다. 개 한 마리의 죽음이야 그에 비하면 별로 중요하지 않다.

마을로 돌아오자 문 앞에서 맞는 건 전에 억지로 여행으로 내몰았던 장로다. 그리고 마을을 구한 데 대한 끝없는 찬사가 이어진다. 하지만 정작 하고 싶은 말은 따로 있다.

“마을에는 영웅이 필요없다. 마을의 조화와 평안에 영웅이라는 존재는 해가 될 뿐. 그러니 여기서 떠나 영원히 마을 사람과 접촉할 수 없는 곳으로 가기 바란다.”

곱게 떠날 수 있지만 장로를 죽일 수도 있다. 하지만 어느 쪽이든 돌아오지 못할 길로 가야 하는 건 마찬가지다. 마을을 떠나는 등뒤로 따뜻하면서도 느긋한 30년대 풍 스탠다드 팝 ‘메이비’가 나른하게 흘러나온다.

박상우(게임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