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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경기자의 시네닷컴]'대박' 꿈꾸는 한국16㎜영화의 씨앗

입력 | 2000-07-13 19:01:00


영화 제작비와 작품의 완성도, 흥행의 성공에는 어떤 상관관계가 있을까. 멋진 영화를 만드는데 제작비야 많을수록 좋을 것이고, 거액을 들인 영화는 ‘대박’을 터뜨리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 상식을 깨는 흥미로운 사례 두가지.

▼저예산 한계 넘는 완성도▼

첫째, 올해 아카데미 작품상을 탄 ‘아메리칸 뷰티’의 제작비는 미국 영화 평균 제작비(4000만∼5000만 달러)에 한참 못미치는 1500만 달러였다. 들인 돈의 액수와 작품성은 비례하지 않는다.

둘째, 지난 주말 미국에서 1억 달러 이상의 돈을 쏟아부은 대작 영화들을 밀어내고 흥행 1위를 차지한 ‘스케어리 무비’의 제작비도 1900만 달러 밖에 안된다. 제작비와 흥행 역시 늘 비례하는 것은 아니다.

거친 일반화의 오류를 무릅쓰고 말하자면, 이번 주말에 개봉될 액션영화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는 두 사례와 여러 모로 닮았다.

첫째, 불과 6500만원을 들여 만든 독립영화 ‘죽거나∼’는 그 이전에 충무로 주류무대에서 만들어진 어떤 깡패영화보다 삶의 진정성을 담아내는데 성공했다. 깡패와 형사로 인생이 엇갈린 고교 동창의 비극을 그린 이 영화는 무겁고 거창한 이야기를 하려는 강박을 벗어 던졌으면서도 짐짓 폼잡는 수많은 액션영화들보다 진심의 무게가 실려있다. 거칠고 다듬어지지 않은 대목들도 많지만, 이 영화는 ‘초저예산’의 한계안에서 가능한 최선의 완성도를 뽑아냈다.

둘째, 막강한 배급사에 힘입어 미국 2000여개 극장에서 개봉된 ‘스케어리 무비’와 달리 겨우 5개 극장에서 개봉되는 ‘죽거나∼’가 ‘대박’을 터뜨리기란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변변한 스타 하나 없는 패러디 공포영화 ‘스케어리 무비’처럼, ‘죽거나∼’도 ‘쌈마이’를 자처하며 수많은 액션영화를 패러디하고 뒷골목 활극과 유머를 뒤섞어 자신의 길을 닦았다. 이 영화는 대개의 독립영화들이 고수하는 변방의 고독한 순결주의를 깨고 주류를 넘본다. 적어도 ‘죽거나∼’는 이 영화이후 비주류 저예산 영화가 주류의 감성을 사로잡는 가능성이 실현될 수도 있음을 보여주는 하나의 씨앗이다.

▼충무로 감성 사로잡을 가능성▼

마틴 스코시즈 감독은 미국 독립영화의 선구자인 존 카사베츠의 16㎜ 영화 ‘섀도우즈’에 대해 “이 영화가 끼친 가장 중요한 영향은, 감독 지망생들에게 더 이상 높은 비용 때문에 영화 만들기 어렵다는 핑계를 대지 못하게 만든 것”이라고 했다. 여름 흥행 대작들 틈새에서 배짱좋게 간판을 올린 한국의 16㎜ 영화 ‘죽거나∼’ 역시 그런 영광스러운 역할을 맡게 되지 않을까.

Susann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