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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 휴가 '하후상박' 신풍속도]직원 "느긋" 임원 "초조"

입력 | 2000-07-14 18:34:00


직장인 김형열씨(34·나모인터랙티브 마케팅팀장)는 몇 년간 별러왔던 히말라야 산행의 꿈을 올해 이루게 됐다. 회사에서 2주의 휴가를 허용한 덕분이다. “입사 3년 만의 첫 여름휴가예요. 지난해만 해도 휴가는 엄두도 못 냈죠. 올해도 휴가를 못 가고 3년째 반납하는 사장에게는 미안하지만 쉴 때 확실히 쉬어야 한다는 생각에 과감히 결정했습니다.” 그는 이달말 14일간의 인도 배낭여행을 떠난다. 직장인의 휴가풍속도가 달라지고 있다. 휴일 없이 일에 매달리는 것이 미덕으로 간주되던 시절은 지났다. 휴가 때마다 윗사람 눈치를 봐오던 샐러리맨들이 이제는 당당한 ‘권리’로 휴가를 즐긴다. 반면 급변하는 경영환경으로 인해 최고경영자(CEO)나 고위임원들에게 여름휴가는 ‘그림의 떡’인 경우가 대부분. 인력이동이 극심해지고 사원들의 복리후생이 중요시되면서 직장 휴가문화에서도 ‘하후상박(下厚上薄)’ ‘소익부 노익빈(少益富 老益貧)’ 추세가 자리잡고 있다.

[직원 넉넉한 일정 "해외로…해외로"]

▽길게, 멀리〓삼성그룹 계열의 유니텔 직원인 정혜림씨(29·여)는 이달초 9박10일간 호주여행을 다녀왔다. 정씨는 “올해부터 최장 2주간의 여름휴가가 허용되면서 직원들 사이에서 호주나 유럽 등에 10일 이상의 휴가를 다녀오는 것이 유행”이라고 말했다.

이같은 흐름을 반영하듯 여행사마다 장거리휴가여행을 떠나려는 젊은 직장인들의 문의가 크게 늘고 있다. 현대드림투어의 경우 10일 이상의 장기 장거리여행 고객이 지난해보다 30%이상 증가했다.

롯데마그넷이 최근 400여명의 직원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77%가 “해외로 휴가여행을 떠나겠다”고 응답했다.

[임원 빠듯한 업무 "휴가 꿈도 못꿔요"]

▽짧거나, 못 가거나〓반면 직장 내 지위가 높아질수록 휴가를 반납하거나 세미나 또는 외국시찰 등으로 대신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온라인 게임서비스업체를 운영하는 김대인씨(36)는 “개발업무 등 일정이 빠듯해 나 자신이 휴가갈 생각은 꿈도 못 꾸지만 직원들은 분위기상 휴가를 보내주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대기업 전자상거래 계열사의 CEO를 맡고 있는 L씨는 여름휴가는 꿈도 꾸지 못한다. 대신 올 초부터 미뤄오던 미국의 정보통신업계 시찰을 다녀올 생각. “경쟁이 치열한 온라인업계의 특성 때문이지요. 직원들은 휴가를 보내야겠지만 임원과 CEO는 단 며칠이라도 자리 비우기가 어려운 실정입니다.”

그는 “여름휴가 계획에 대해 이야기하는 부하직원들이 부러운 생각도 든다”고 말했다.

[移職홍역 기업 '내식구 챙기기' 휴가 인심]

▽잘 쉬어야 일도 잘한다〓올해 직원들의 휴가가 이처럼 ‘풍요’로워진 것은 지난 연말과 연초에 걸쳐 기업마다 대대적 이직 및 벤처열풍을 겪으면서 ‘내 식구 관리’와 ‘사기 올리기’에 각별히 신경을 쓰기 시작했기 때문.

현대 LG 등 대기업에서는 직원들에게 단체로 금강산여행을 보내주거나 자녀들을 위한 여름영어캠프를 여는 등 예년에 없는 프로그램으로 휴가를 통한 사기 진작에 신경을 쓰는 분위기다.

유니텔 김인수(36)인사과장은 “여가중심문화의 확산과 최근 심해지고 있는 인력이동의 여파로 인해 휴가도 직원들이 적극적으로 행사할 수 있는 권리개념으로 바뀌고 있다”며 “업무흐름의 중단을 우려하기보다는 차라리 이런 흐름을 적극 수용해 직원들이 재충전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주는 것이 생산성 향상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yc97@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