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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북스]'한국경제 왜-어떻게 수렁에 빠졌었나'

입력 | 2000-07-14 18:39:00


요즘 세상이 어수선하다. 문제는 자꾸 터지는데 무엇 하나 시원스럽게 해결되는 게 없다. 모두들 개혁을 해야 한다고 떠들면서도 막상 개혁을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대목에 이르면 시비만 분분하다. 바깥에서 한국경제를 보는 눈도 점차 엄해지고 있다. 마치 IMF 사태 직전인 97년에 일어났던 일련의 국면들을 연상케 한다.

‘강경식의 환란일기’를 읽어보면 한국경제가 한발자국씩 수렁 속으로 빠져 들어갔던 과정을 생생하게 알 수 있다. 환란일기는 강경식(姜慶植)전 부총리 겸 재경원장관이 일기체로 쓴 환란보고서다. 환란 주범으로 석달 동안 감옥에 들어갔다 나온 후 쓴 것이다. 회고와 반성과 해명이 같이 들어 있다.

강경식씨는 평소 개인 PC에 공사간의 일들을 메모식으로 기록해 둔다 하는데 그 기록을 바탕으로 재정리하여 책으로 묶은 것이다. 그래서 사건 경과나 관계자들간의 대화 내용 등이 매우 상세하다.

‘강부총리’의 입장에서 쓴 환란보고서이기 때문에 사건 전모를 종합적, 객관적으로 그렸느냐엔 이의를 달 수 있겠지만 핵심 당사자가 기록을 토대로 직접 썼다는 점에선 귀중한 자료다.

강경식씨는 한보 부도가 터져 세상이 어수선했던 97년 3월 부총리 겸 재경원장관으로 입각하여 한국이 IMF 체제로 들어가기 직전인 11월 퇴진하기까지 8개월 동안 경제팀장으로 경제 소용돌이의 핵심에 있었다.

그때 유달리 사건들이 많았다. 연초에 터진 한보 사건을 비롯하여 대농, 해태 부도, 곧 뒤이은 기아사태와 금융개혁 파동, 그리고 마지막으로 덮친 동남아 통화위기 등 숨가쁜 국면들의 연속이었다.

96년 하반기부터 경기도 기우는데 성급한 국제화가 추진되고 그것이 낡은 경제사회 시스템과 부딪혀 파열음을 냈다. 공교롭게도 97년 말 대선을 앞두고 권력누수와 정치적 소용돌이가 같이 찾아온다. 모두들 사태를 우려하여 뭔가 획기적 개혁을 서둘러야 한다고 느끼면서도 오랜 타성에서 탈피하지 못하고 결국 IMF 사태를 맞고 만다.

몰라서가 아니라 리더십과 결단력, 또 실천이 없었던 것이다. 가야할 길을 뻔히 알면서도 무엇에 홀린 듯 자꾸 엉뚱하게 가 버린 안타까운 과정들이 상세히 나온다. 위기란 처음엔 심각하지 않아도 그것이 자꾸 쌓이면 걷잡을 수 없는 사태로 치닫는다는 것을 알려준다.

8개월 동안 여러 일들에 얽힌 당사자들이 실명으로 등장하기 때문에 입장이 곤란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나라엔 개인회고록 같은 것을 잘 안 내고 내더라도 모나게 안 쓴다. 강경식씨는 머리말에서 다소간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공인은 기록을 남겨야 한다는 생각에서 이 환란보고서를 내는 것이라고 적고 있다.

IMF 사태라는 미증유의 국난을 겪었지만 그에 대한 객관적 기록이 드물다. 아직 제대로 된 공식 보고서도 없다. 97년에 일어났던 그 엄청난 사건이 왜, 어떻게 일어났는지를 정확히 알아야 앞으로 두 번 다시 안 일어나게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환란일기는 IMF 사태를 파악하는데 도움이 되는 중요한 단서들을 제공하고 있다. 다른 분들도 이런 기록들을 많이 내놓아야 전체상이 잡힐 수 있을 것이다.

(삼성경제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