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환경 문제는 인류가 당면한 가장 긴박하고도 근본적인 문제의 하나이다. ‘생태 제국주의’는 이 문제에 대해 특이하게도 역사적으로 접근한 얼마 안 되는 책 중의 하나이다. 현재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이 심각한 환경 문제가 역사적으로 어떤 경로를 통해 형성되었는가를 봄으로써 좀 더 넓고 입체적인 시각을 가질 수 있게 해준다는 점이 이 책이 가지고 있는 장점이다.
이 책의 전체 요지는 간단하게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다른 대륙, 다른 문명의 사람들과 달리 유럽인들은 근대 이전부터 해외로 팽창하여 왔다. 북아메리카,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등이 그런 곳으로서 이곳에서는 유럽 출신 백인들이 기존의 정주민들을 내몰고 그 땅을 빼앗은 다음 거기에 유럽 문명을 복제했다. 그런데 이와 같은 유럽의 제국주의적 팽창은 단지 인간의 소행일 뿐만이 아니라 생태계 전체가 팽창한 결과라는 점이 중요하다.
이 책에서 가장 전형적인 사례로 들고 있는 뉴질랜드를 보자. 원래 뉴질랜드는 빽빽한 숲 가운데에서 마오리 족이 원시적인 삶을 영위하고 있던 곳이었다. 그런데 백인들이 이 섬을 ‘발견’하고 난 후 환경이 변해갔다. 백인들은 우선 이곳 기후가 양을 치는데 적합하다고 보고 양을 들여와 키웠다. 그러기 위해서 양의 사료 작물까지 도입해야 했고, 또 이 풀들이 잘 자라게 하기 위해서 나무들을 전부 태워버렸다. 더 나아가 이 풀들이 자체적으로 수정을 하여 번식할 수 있도록 유럽산 벌을 들여와 풀어놓았다.
그런데 특이한 점은 이와 같은 구대륙의 동식물들이 새로운 땅에 들어오면 하나같이 엄청난 힘을 가지고 빠르게 퍼져나간다는 점이다. 유럽에서 기를 못 펴던 밭작물이 뉴질랜드에서는 잡초처럼 뻗어나가고, 하다못해 유럽의 쥐도 이곳의 쥐를 몰아내 버리며, 심지어는 병균도 말할 수 없이 강해서 예컨대 유럽의 성병균이 마오리 족 원주민들을 몰살시키는 데 일조했다.
도대체 그 이유가 무엇일까? 규모가 크고 다양한 생물상과 그렇지 못한 생물상이 만나면 언제나 전자가 이기게 되어 있다. 유라시아 생물계에서 더 치열한 진화 과정을 겪은 동식물들이 강한 생명력을 가지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 마치 유럽의 늑대와 호주의 캥거루가 만난 것처럼 구대륙의 생물들이 신대륙의 토작종들을 정복해 버렸다. 인간의 정복은 이런 생물학적 팽창의 최종적인 완수 과정이었던 것이다.
이처럼 이 책은 근대사의 중요 과제인 서구의 팽창을 참신한 시각에서 재조명하고 있다. 여기에 나오는 풍부하고 흥미진진한 사례들은 우리가 잘 몰랐던 중요한 정보들을 담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이 책을 받아들이는 데에는 대단히 큰 주의를 요한다. 차라리 이 책이 가진 참신성에 속아서는 안 된다고 말하고 싶다. 단적으로 말해서 이 책에서는 서구 제국주의 침탈의 고통스러운 면에 대해 완전히 침묵하든지 나아가 철저하게 왜곡시켜 버렸다. 겉보기에 중립적으로 보이는 생물학적 팽창의 뒤로 인간의 흉악함이 숨어버린 것이다. 그동안 전세계의 자원을 파괴하고 오늘날의 극심한 환경 문제를 야기한 서구의 책임은 온데간데 없고 오히려 전지구가 미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등 ‘네오―유럽’을 보호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결국 환경 문제 역시 우리의 시각에서 바라보고 정리하는 작업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감하게 된다. 그러나 그러기 위해서라도 아직 ‘그들’의 성과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이 책은 그와 같은 점을 염두에 두고 비판의 정신을 가슴에 품은 채 찬찬히 들여다보면 여러 가지 면에서 정말로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는 훌륭한 텍스트이다. 439쪽 1만4000원.
주 경 철(서울대교수·서양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