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자문기구인 새교육공동체위원회가 최근 정부의 재정지원을 받지 않으면서 학생과 교사 선발, 교과과정 편성, 수업료 책정 등을 자유롭게 하는 자립형 사립고 제도의 2002년 시범 도입을 대통령에게 건의했다. 이에 대해 고교평준화정책이 초래한 학교교육의 획일성을 완화하고 학생들에게 원하는 교육을 받을 권리를 보장하는 방안이라는 찬성론과, 입시 경쟁을 부추기고 고교평준화정책과 공교육의 기반을 흔드는 위험한 발상이라는 반대론이 엇갈리고 있다.》
▼찬성/다양한 학생적성 살리는데 도움▼
자립형 사립고등학교 제도를 2002년부터 시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정책 건의가 발표되자 이를 지지하는 여론과 함께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사실상 고교평준화 정책을 깨뜨리고, 교육을 시장기능에 맡기며, 공교육을 포기하겠다는 발상’이라고 비난하기도 한다.
먼저 밝혀 두어야 할 점은 자립형 사립고등학교 제도의 도입이 공교육의 포기를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현재 정부에서 추진하고 있는 공교육의 내실화 방안은 계속 추진될 것이다. 학급당 인원수를 줄이고 교원 수는 늘리며 뒤떨어진 교육환경을 개선하고 교육정보화의 기틀을 마련하는 등 학교교육의 질적 개선을 위한 노력은 지속적으로 진행될 것이다. 정부는 결코 국가의 기틀인 공교육 체제를 단순히 시장에 내맡기는 정책을 펼쳐 나가지는 않을 것이다.
다음으로 자립형 사립고등학교 도입의 근본 취지는 고교평준화의 기본 골격을 유지하면서도 평준화의 문제점을 부분적으로 보완하자는 것이다.
새교육공동체위원회를 비롯한 여러 기관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현재 국민의 70% 정도가 고교평준화정책을 지지하고 있으나 또 70% 이상의 국민이 고교평준화정책으로 인한 학교교육의 획일화 등의 문제점을 보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새교육공동체위원회는 고교평준화의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 자립형 사립고등학교 제도의 도입과 함께 디자인고, 조리고 등의 특성화 고교를 확대하고 국 공 사립대 부속 고등학교들도 학교의 희망에 따라 자율학교로 전환할 수 있도록 건의했다. 여러 형태의 고등학교를 통해 학교교육의 다양성을 도모하자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학생과 학부모들에게 부분적이나마 학교 선택권을 주도록 하자는 것이다. 학부모는 자신의 교육적 신념에 따라 자녀의 학교를 선택할 수 있고 학생은 적성, 흥미, 학업수준 등에 따라 원하는 학교에 진학해 교육받을 권리가 있다.
이는 학부모의 교육권이고 학생의 학습권으로 자유민주주의 사회의 기본 권리이다. 자립형 사립고등학교 제도의 부분적도입은 제한된 범위에서나마 학부모와 학생들에게 이런 권리를 돌려주자는 것이다.
현재 정부의 재정 지원을 받지 않는 사립학교는 전국에 58개교가 있다. 이 가운데에서 시범학교를 시도별로 한 두개 선정할 것이다.
각 학교로부터 건학이념, 교육방식, 교육과정의 편성과 운영 방침 등을 제출받아 이를 면밀히 검토 평가해 시범학교를 선정하게 된다. 이 가운데에는 학업에 중점을 두는 학교도 있겠지만 종교적인 교육이념, 학과공부보다는 인성교육과 정서 함양에 노력을 기울이는 학교도 있다.
적어도 시범단계에서는 교육부 혹은 각 시도 교육청이 자립형 사립고등학교가 일부 국민이 우려하는 것처럼 명문대 진학을 위한 입시 위주 교육에만 치중하지 않고 다양한 형태로 운영될 수 있도록 학교를 선정할 것이다.
정진곤(새교육공동체위원회 상임위원·한양대 교수)
▼반대/고교 '줄세우기'로 과외 부채질▼
새교육공동체위원회는 최근 고교평준화의 틀을 깨고 학교의 자율성을 높인다는 미명 아래 자립형 사립고교의 도입을 건의했다. 과연 자립형 사립고교가 도입됐을 때 이들 학교는 어떤 활동을 지향할 것인가? 학생의 특성과 소질을 계발해 잠재능력을 한껏 발휘하도록 할 수 있는 이상적인 학교가 될 것인가? 필자는 그렇게 될 수 없다고 확신한다. 왜냐하면 자립형 사립고교에 입학한 학생이나 학부모들 역시 대학 입학을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등학교가 사회진출을 위한 마지막 단계의 교육기관이 아니라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그들은 대학진학이라는 당면 목표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 더구나 학부모의 재원으로 운영되는 학교인데 이곳의 졸업자들은 비명문대학 진학을 목표로 하지는 않을 것이다. 명문대학 입학을 위해 학생, 학부모, 나아가 학교가 총력을 기울일 것이 뻔하다.
교육부는 2003년이면 대학입학 정원이 고교 졸업자 수를 넘어 입학 경쟁이 수그러들 것으로 예견하고 있다. 나아가 수능시험은 자격고사처럼 되고, 학생의 특기와 적성을 존중하는 고교 교육이 정착되며, 대학의 다양한 선발방법 등이 입학경쟁을 크게 완화시킬 것으로 기대한다.
그러나 전국의 학생을 등수에 따라 한줄로 세우는 국가고사는 없어진다 해도 전국 200여개 대학이 서울대를 정점으로 한 줄로 늘어선 대학 서열은 그대로 있다. 학생선발 방법이 아무리 다양해져도 기존의 대학서열이 확고한 이상 명문대에 입학하려는 경쟁은 완화되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두뇌한국(BK)21 사업에 따라 대학원중심 육성대학으로 선정된 대학은 모두 소위 명문대들이며 학부학생 수를 줄이고 있는 대학들이다. 그리고 이들은 국가의 전폭적인 재정 지원을 받고 기존의 명성에 힘입어 명문대학원의 위치를 확고히 하려고 할 것이다.
이런 조건에서 명문대 입학경쟁은 더 치열해지고 경쟁은 대학원으로까지 이어질 수밖에 없다. 명문대 입학경쟁이 세계 최고 수준의 학부모 부담 교육비, 교육의 부실화, 낮은 국가경쟁력의 원인임을 생각할 때 대학 서열화는 하루 빨리 개선돼야 한다.
대학 서열체계가 확고한 상황에서 자립형 사립고교의 허용은 고등학교의 서열체계를 만드는 것이다. 그 결과 학교 자율화를 통한 교육의 정상화는커녕 지금의 입시위주 교육에 날개를 달아주는 결과만 낳을 것이다.
명문학교에 입학하기 위한 경쟁은 고교에서 대학원에 이르기까지 치열해져 제도교육은 부실해지고 과외가 성행해 교육비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 지금도 우리나라는 20조원이 넘는 사교육비를 빼고도 국가와 학부모가 제도교육에 대는 돈이 국내총생산(GDP) 대비 7.4%로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최상위에 속한다. 따라서 정부는 먼저 대학의 서열화 현상을 완화하는데 온힘을 기울이고 자립형 사립고교 도입에는 신중을 기해야 한다.
고형일(전남대 교수·교육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