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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인물]김호기 국세청 부가가치세과장

입력 | 2000-07-16 18:55:00


국세청 김호기(金浩起·48) 부가가치세과장은 요즘 KBS에서 격주로 중계하는 신용카드 영수증 복권 추첨방송에 고정 출연한다. 지난주에는 개그맨들과 함께 미국에 가서 반바지를 입고 춤추는 ‘튀는 장면’을 촬영하기도 했다.

22년간 세무공무원으로 일해왔지만 이런 경험은 처음. 대학생 아들까지 둔 공무원으로서 여간 민망한게 아니다. 하지만 국세청이 ‘명운(命運)’을 걸고 있는 ‘신용카드 가맹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내 한 몸 망가지는 것은 개의치 않겠다’는 게 그의 소신이다.

신용카드 사용을 늘리기 위한 김과장의 ‘전쟁’은 지난해 시작됐다. 수입금액을 적게 신고하는 자영업자와 월급이 투명하게 드러나는 샐러리맨과의 세금 불평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신용카드 사용을 확대해야 하기 때문.

그래서 내놓은 방안이 ‘국세청 개청 이래 최고의 아이디어’라고 평가받는 신용카드 영수증 복권제. 신용카드 영수증을 추첨해 상금을 주는 방법으로 신용카드 사용을 늘리자는 계획은 그대로 적중했다.

사실 ‘영수증 복권제’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국세청은 68년과 78년 두차례 영수증 복권제를 도입했다가 실패한 경험이 있다. 영수증 주고받기는 늘었지만 당시 국세청 시스템과 연계가 안돼 세수를 증가시키지 못했기 때문.

그러나 이번에는 일반 영수증이 아닌 ‘신용카드 영수증’으로 범위를 줄임으로써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 지난해 1∼5월까지 신용카드 사용금액은 13조9257억원. 올해 같은 기간에는 27조1543억원으로 두 배 가까이 늘었다. 모든 일을 기획하고 집행한 김과장 스스로도 놀랄만한 성과다.

어려움도 있었다. 상금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260억원을 신청했지만 배정받은 예산은 고작 108억원. 국회의원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취지를 설명한 끝에 간신히 정부안보다 68억원 늘어난 176억원의 예산을 국회에서 승인받았다.

김과장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카드깡’을 적발하기 위해 신용카드 ‘조기경보 시스템’까지 도입했다. 종전에는 신용카드로 물건을 판 업소가 은행 등에 청구하면 3일 뒤 대금을 받을 수 있었지만 5월부터는 은행에 대금 지급을 청구하면 즉시 국세청에 통보돼 위장 가맹점 여부를 판별한 뒤 대금을 지급한다.

김과장은 이때문에 조직폭력배들로부터 상당한 위협을 받고 있다. ‘카드깡’을 수입원으로 삼아온 이들이 조기경보 시스템 때문에 영업에 어려움을 겪자 협박까지 일삼고 있는 것.

부가세과장은 국세청 내에서 비서관 공보관 기획예산과장과 함께 일이 힘들다고 해서 ‘4D’과장으로 꼽힌다. 하지만 김과장은 요즘 일하는게 너무 즐겁다. 자신이 의도한대로 정책효과가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는 신용카드 가맹을 하지 않으면 세무조사까지 받게 됩니다. 소나기만 피하면 된다는 생각은 버리는 게 좋습니다.”

고려대 신문방송학과 출신으로 행시 합격(19회)후 줄곧 국세청에서 일했다.

dreamlan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