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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 '끈 패션' 거리 누빈다

입력 | 2000-07-20 18:31:00


▼슬리브리스-브라리스 유행▼

"사무실 안에서요? 특별히 쳐다보는 사람 없는데요. 밖에서야 말할 것도 없고요.”

스파게티 가락처럼 가느다란 어깨끈이 달린 러닝톱 차림으로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로데오거리를 걷던 이재숙씨(27·노보텔 식음료부). “직장에서 그렇게 입어도 괜찮느냐”고 묻는 기자가 이상스럽다는 눈치다. ‘끈 패션’은 단순한 여름 유행이 아니라 일터에서도 인정받는 평상복이라면서.

‘레스(less·없음)’가 유별나게 두드러지는 올 여름. 여성들은 ‘소매’에서 탈출하고 ‘가슴’에서 해방됐다.

소매 없는 슬리브리스와 브래지어 대신 안감을 넣은 브라리스 패션, 거기에다 속옷과 겉옷, 실내복과 실외복의 경계가 없어진 이너―아웃리스 경향까지 보인다.

어깨끈, 목끈, 등 부분의 끈이 강조된 옷 등 이제는 아예 ‘끈 패션’이다. 지난 세기말 ‘배꼽’을 드러내는 데서 비롯된 섹스어필 패션은 가슴을 위시한 상반신 전체의 대담한 노출로 발전했다.

연예인이나 감각파 여성들만의 얘기가 아니다. 중고생 대학생 그리고 보수적인 기성세대와 함께 일하는 직장여성들까지 당당하게 몸을 드러낸다.

이화여대 앞에서 마주친 송노현양(19·경기 고양시 일산구 마두동)은 가슴이 보일 듯 말 듯 아슬아슬한 어깨끈 원피스를 걸쳤다. “엄마 옷 빌려 입고 나왔어요.” 40대의 어머니도 가끔 입는 옷이라는 얘기다.

방학을 맞아 귀국했다는 미국 유학생 허승은양(20·뉴욕대 1)은 “맨해튼에서도 스트랩 스타일(어깨끈만 달린 차림)이 대부분”이라며 “입기에 따라서 밋밋한 체형을 볼륨 있게 커버해 준다”며 좋아했다.

▼파스텔 톤에서 대담한 원색으로▼

고가 저가 할 것 없이 여성의류업체에선 단연 슬리브리스 스타일과 두 개의 끈을 목선까지 덧맨 홀터넥 스타일을 올해 최고 흥행제품으로 꼽는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대담한 노출의 옷은 파스텔톤의 소극적 색상이었죠. 그런데 올해는 바이올렛, 레드 같은 대담한 원색이 대거 등장했어요. 판매가 60% 이상 늘었으니까요.”

서울 강남구 청담동 DKNY 매장의 이선희매니저는 “전 같으면 바닷가에서나 볼 수 있었던, 아예 어깨끈이 없어 몸통을 튜브로 감은 것 같은 ‘튜브형’도 인기”라고 전했다.

여성패션브랜드 ‘씨’ 역시 지난해 여름보다 170%나 많은 노출 패션을 시장에 내놓은 상태. 브래지어 끈이 잘 안보이게 처리한 비비안의 ‘투명브라’도 2·4분기 매출이 1·4분기에 비해 200% 이상 늘어났다.

이같은 대담한 노출패션이 우리나라만의 경향은 아니다. 뉴욕타임스도 “지금 뉴욕 여성들은 거리에서나 직장에서나, 뚱뚱하거나 나이 들거나 어깨를 시원하게 드러낸 노출 패션을 즐긴다”고 최근 소개했다.

“우리야 고맙지, 뭐.”

아찔하게 상체를 드러낸 젊은 여성을 보고 남자들은 이렇게 말한다는데, 도대체 왜 갈수록 여성들은 노출을 즐기는 걸까.

TV 등 미디어의 영향, 몸매가 ‘되는’ 젊은 여성들이 자신 있게 자기를 표현하는 당당함, 남과 똑같기는 싫지만 그렇다고 뒤지기도 싫은 N세대의 ‘미 투(Me Too)’성향을 빼놓을 수 없다.

▼편안… 만족… "자신감 표현"▼

한성대 최주해교수(의상학과)는 “가슴과 허리 등 인체의 곡선을 강조하는 ‘보디 컨셔스(body conscious)’가 조류로 떠오른 까닭”이라고 말한다. 히프라인과 배꼽의 노출은 간접적이고 하부적이지만 가슴 부위의 노출은 가장 적극적이며 직접적인 섹스어필의 형태로 볼 수 있다는 분석.

보디 이미지 전문가인 미국 켄터키대 수잔 보르도 교수는 “10년 전만 해도 여성들의 꿈은 커리어와 가족이었으나 이제는 커리어와 섹시한 옷으로 달라졌다”고 지적했다. 섹시하게 옷을 입는 것은 이성을 유혹하기 위해서라기보다 스스로 편안하고 만족하게 느끼면 된다는 자신감의 표현이기도 하다.

아찔하다고? 그것은 노출패션을 보는 당신의 시각일 뿐. 그들은 당당하게, 시원하게 드러낸 몸으로 이렇게 이유를 말하고 있다. “나니까.”

cij199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