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 일본 사회의 관료주의 규범과 팽팽한 의지에 불타는 개인의 갈등을 툭 던져놓고는 절묘하게 치고 빠진다. 바람직한 대중영화의 꼴과 일본사회의 집단 이데올로기에 대한 헌사 사이에서 교묘하게 균형을 취한다.
일본에서 700만의 관객을 동원한 은 블록버스터가 아니다. 텔레비전 드라마를 영화로 옮긴 것이며 적당한 유머와 풍자와 멜로드라마의 긴장이 배어 있어 그런 대로 재미있지만 텔레비전 드라마 수준을 근본적으로 뛰어넘는 것은 못된다.
일본 최고의 흥행영화라 해도 이것은 대중문화의 총아인 TV의 영향력에 기댄 기획상품처럼 보이는 것이다. 스타도, 겉멋부리기도, 스펙타클도 없지만 아기자기하고 귀엽다. 일본의 생활 양식과 밀착한 세부묘사가 살아있기 때문이다. 현대 일본의 대중영화의 꼴이 자연스럽게 배어나는 것이다.
일본식 관료주의는 처음부터 끝까지 을 관통하는 풍자대상이다. 친선도모골프대회에 나가는 간부를 아침 일찍 모시고 가기 위해 형사들이 잠복 근무하듯이 대기하고 있는 첫 장면은 일본식 집단주의가 끈끈한 관료주의와 동의어라는 것을 일찌감치 일러준다.
관료주의는 곳곳에 스며 있다. 강물에 변사체가 떠오르자 그 강을 경계로 관할이 나뉘는 두 경찰서는 서로 그 시체가 자기네 수사 대상이라고 우긴다. 납치범이 요구한 돈을 경시청이 낼 것이냐, 경찰청이 낼 것이냐를 두고 서로 미루는 간부들에게도 조직의 관성에 젖어 있는 관료주의는 체화된 생활양식이다.
은 그런 관료주의의 규범과 팽팽한 의지에 불타는 개인의 갈등을 툭 던져놓고는 절묘하게 치고 빠진다. 이런 멍청한 관료적 인간들과 주인공 아오시마는 다르다. 그는 다소 천방지축 성격이며 조직과 충돌도 서슴지 않는다. 유능한 인재는 아오시마 말고도 또 있다.
조직이 아수라장으로 굴러가는 꼴과는 상관없이 은퇴를 앞둔 고참형사는 묵묵히 자기 일을 감당하고 있으며 절도 수사에 능한 여형사 스미레는 책상 서랍 안에 늘 사표를 써둔 채 주어진 임무를 성실하게 처리한다.
조직과 개인의 갈등이라는 대립구도를 세워놓고 이 영화는 그 조직의 틈새 사이에 꽉 끼어 있는 관료주의의 벽을 경쾌하게 건드린다. 수사의 진전 유무에 관심을 쏟기보다는 경비 처리에 고심하는 경찰 간부의 무능은 통탄할 수준이고, 첨단 장비를 동원해 회의석상에 둘러앉아 탁상공론 수사를 벌이는 본부 간부들의 '현대적인' 수사 방식의 수준은 현장에서 발로 뛰는 아오시마와 고참 노형사의 직감, 심지어 컴퓨터에 미친 연쇄 살인범의 충고에도 못 미친다.
그리 요란하진 않지만, 예상할 수 있듯이 영화는 관료주의에 젖지 않은 유능한 주인공들이 집단의 관료주의 벽을 뚫고 영웅적으로 사건을 해결하는 것으로 끝난다. 영화의 절정부는 범인을 눈앞에 두고도 본부 요원들이 체포할 때까지 기다리다가 중상을 입는 아오시마의 모습을 담으며 관료조직과 개인의 충돌이라는 주제를 멋있게 끌어올렸다.
이 영악한 것은, 또 텔레비전 드라마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은, 만듦새뿐만 아니라 영화가 겨냥하는 풍자가 관객에게 그리 부담을 주지 않는 선에서 일격을 가하는 척했다가 슬쩍 빠져나간다는 것이다. 부상 당한 아오시마를 호송하는 차가 병원으로 향할 때 거리 곳곳에 배치된 순경들이 거수경례를 붙이는 장면은 장관이다.
일사불란한 그 집단 관료주의 조직의 개인에 대한 경배가 멜로드라마적 감동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그것은 개인이 조직을 이기는 또 하나의 소 영웅담일까. 영화 플롯의 또 다른 축은 말단 형사 아오시마와 빠르게 출세해 특별수사본부의 지휘자의 자리에까지 오른 무로이의 우정과 갈등을 따라가고 있으며 그것은 고참 노형사와 납치 당한 부국장이 수십년 간 맺어온 우정의 복사판이기도 하다.
영수증을 형사들 몰래 없애버려 경비절감을 기도한 서장을 체포하는 해프닝을 종결부에 슬쩍 집어넣고 있긴 하지만 은 근본적으로 상하 신분의 벽이 두터운 일본의 집단조직 체제의 아켈리스건을 찌르는 것이 아니라, 찌르는 척 하면서 사실은 그 체제에 더욱 열심히 봉사하자는 슬로건을 영리하게 감추고 있는 것이다.
부상당한 몸으로 병실 앞에서 재활훈련에 한창인 아오시마가 친구이자 경찰 고위 간부인 무로이의 앞날을 염려하는, 거의 방백에 가까운 감상적인 대사는 이 바람직한 대중영화의 꼴과 일본사회의 집단 이데올로기에 대한 헌사 사이에서 얼마나 교묘하게 균형을 취하는지 알게 해준다.
을 통해 본 일본 현대 대중영화는 재치덩어리이긴 하지만 야심도, 패기도 없다. 실생활의 면면이 묻어있기는 하지만 TV와 스크린을 오가면서 그저 다시 한번 더 열심히 살아보자고 달콤한 말로 치장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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