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고지신(溫故知新).'
다음달 5일 일반에 공개되는 월트 디즈니社의 신작 애니메이션 은 '옛 것을 되살려 새롭게 한다'는 이 경구가 절로 떠오르는 작품이다. 은 등과 함께 월트 디즈니의 대표작중 하나로 꼽히는 의 업그레이드판.
지금부터 60년 전인 1940년에 만들어진 는 여러 평론가들이 '20세기 애니메이션 베스트10중의 하나'로 꼽는 걸작. 희화적인 캐릭터가 일정한 스토리 위에서 움직이는 일반적인 애니메이션 서사구조에서 벗어나 클래식 음악이 주는 심상을 자유분방한 상상력으로 표현한 영상은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시도였다.
하지만 빗자루가 걸어다니고, 악어와 하마가 발레를 추는 의 영상세계야말로 '생명이 없는 것을 살아 움직이게(애니메이트)한다'는 애니메이션의 기본정신에 가장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세기가 바뀌어 새로운 음악과 보다 발전된 테크놀로지로 치장됐지만 에는 여전히 60년 전 월트디즈니의 시도했던 실험정신이 그대로 살아 있다.
움직이는 한 폭의 추상화를 연상시키는 현란한 컴퓨터 그래픽으로 묘사한 베토벤의 교향곡 제 5번 1악장을 시작으로 레스피기의 '로마의 소나무', 거쉬인의 '랩소디 인 블루', 쇼스타코비치의 '피아노 협주곡 2번', 생상의 '동물의 사육제', 뒤카의 '마법사의 도제', 엘가의 '위풍당당행진곡', 스트라빈스키의 '불새 연작 1991' 등 8편의 작품이 음악과 함께 어우러지고 있다.
무려 9년간의 준비작업 끝에 내놓은 은 60년 전 오리지널 작품에 등장한 시퀀스 중 미키 마우스가 나오는 '마법사의 도제' 외에 모두 새로운 작품으로 바꾸었다. 지휘 역시 원작이 레오폴드 스토코프스키가 지휘하는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였다면, 이번에는 제임스 레바인이 지휘하는 시카고 심포니이다.
특히 새로 제작한 작품중 베토벤 교향곡 5번을 비롯한 여러 작품이 현재 애니메이션계의 주류인 컴퓨터 그래픽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됐다. 물론 '랩소디 인 블루'처럼 손맛을 느낄 수 있는 고풍스런 복고풍 '영상'도 있다. 그러나 컴퓨터 그래픽이든, 아니면 전통 제작방식이든 어느 작품도 기술적인 측면에서 허점을 찾기가 어려울 정도로 탁월한 완성도를 자랑하고 있다.
하지만 에서 기술적인 완성도보다 더 점수를 주고 싶은 부분은 고정관념을 깬 애니메이터들의 아이디어.
'로마의 소나무'를 환상적인 고래의 공중유영으로 새롭게 해석하거나, 웅장한 분위기의 '위풍당당 행진곡'에 도널드 덕이라는 캐릭터와 노아의 방주를 절묘하게 접목시킨 것은 음악에 대해 갖고 있는 고정관념을 뒤집은 풍부한 상상력의 산물이다. 생상의 '동물의 사육제'에서 요요와 함께 움직이는 홍학들의 절묘한 리듬감각은 장면 곳곳에 숨어있는 익살과 함께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고정관념에 대한 애니메이터들의 도전은 이른바 '디즈니식 영상'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으로도 이어지고 있다. 안데르센의 장난감 병정 동화를 응용한 쇼스타코비치의 피아노 협주곡 2번처럼 전형적인 '디즈니 브랜드'를 느낄 수 있는 것도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최근 접해온 디즈니 애니메이션과 느낌이 다른 것이 많다. '랩소디 인 블루'는 디즈니에 반기를 들고 나간 UPA의 과 같은 작품을 보는 듯하고, '불새'에 등장하는 봄의 요정은 아예 일본 애니메이션의 분위기를 물씬 풍긴다. 전에 볼 수 없던 이러한 시도는 마치 패밀리 레스토랑의 음식처럼 지나치게 규격화돼 식상한 감을 주었던 기존 디즈니 애니메이션과는 다른 신선한 충격으로 와닿고 있다.
60년의 시공을 거슬러 새롭게 등장한 . 과거 원작이 지향했던 작가정신은 그대로 지향하면서도 어느 것에도 구애받지 않으려는 애니메이터들의 노력이 관객에게 '즐겁게 꿈꿀 자유'를 주고 있다. 미국에서 은 아이맥스 영화로도 개봉됐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국내에서는 그 박진감 넘친 화면을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
김재범 oldfiel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