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품 제거인가, 대형 투신사들의 횡포인가.”
이번주에 공모주청약을 실시하는 기업들이 공모가를 확정하는 과정에서 공모 철회 의사까지 밝히는 등 유례없이 진통을 겪었다. 또 일부 종목의 경우 한국투신 대한투신 현대투신 등 대형 3투신사에 공모주 물량이 배정되지 않는 등 혼란을 빚었으며 이같은 상황이 지속될 경우 발행시장이 크게 위축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사태는 공모가를 결정하는 기관 대상 수요예측 과정에서 기관들이 제시한 가중평균 단가가 공모희망가격이나, 심할 경우 본질가치를 밑도는 상황이 속출하면서 비롯됐다. 발행기업들은 “대형 3투신사가 담합에 의해 지나치게 낮은 가격을 제시, 가중평균가를 의도적으로 떨어뜨렸다”고 비난했다. 반면 투신사측은 “그동안 지나치게 거품이 많았던 공모가가 제자리를 찾아가는 것”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난산 끝에 낮아진 공모가〓12개사 가운데 지난주 금요일인 21일까지 공모가가 결정된 기업이 절반에 불과할 정도로 진통을 겪은 끝에 23일 현재 8개사가 공모가를 결정했다. 이중 공모가가 공모희망가보다 높게 결정된 곳은 텍셀 한 군데에 불과했다. 특히 코람스틸은 본질가치 1666원보다 낮은 1500원에 공모가를 결정했다. 청약 단가가 본질가치보다 낮아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24일로 결정을 미룬 오리엔텍 코리언일랙트로닉스파워소스 등 4개사도 가중평균가가 공모희망가나 본질가치를 밑돌고 있어 낮은 가격에 공모가가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투신권 대 발행기업 힘겨루기〓3대 투신사는 ‘담합’ 의혹까지 받아가면서 청약 가격을 낮게 제시한 데 대해 “코스닥시장이 침체돼 주가가 공모가 이하로 떨어지는 종목이 속출하는 등 공모가 거품에 따른 부작용이 발생하고 있는 상황에서 당연한 조치”라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발행기업들은 “정상적인 수요예측을 통해 이같은 결과가 나온다면 어쩔 수 없지만 3대 투신사가 영향력을 무기로 담합해 이런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은 비신사적인 행위”라는 입장. 실제 서울제약의 경우 3대 투신사는 일제히 공모희망가의 절반 가량인 1만5000원을 제시했으며 코리언일랙트로닉스파워소스 역시 3투신은 본질가치에도 못미치는 1500원을 똑같이 써냈다.
이처럼 갈등을 빚자 서울제약과 단암전자통신이 공모주 청약 사상 최초로 3대 투신사에 공모주 배정을 하지 않기로 결정하는 등 발행기업들의 ‘역공’이 시작됐다.
▽거품 제거는 긍정, 발행시장 침체는 우려〓그동안 공모가가 본질가치보다 지나치게 높다는 지적은 줄곧 제기돼왔다. 따라서 이번 사태가 공모가의 거품을 제거하는 중요한 계기가 된다는 점에선 긍정적인 측면이 많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다만 발행시장의 침체가 가속화할 것이라는 우려도 만만치 않다. 특히 8월경 공모주청약을 실시하는 기업들은 공모가를 가중평균가의 ±10%내에서 결정하도록 규정이 변경됨에 따라 공모가가 지나치게 낮게 될 것을 걱정한 기업들이 공모주 발행에 소극적일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다. 이렇게 되면 발행시장 위축은 물론 개인투자자들의 초기 투자기회가 적어져, 투자심리위축에 따른 ‘증시 침체 지속’이라는 폐해가 잇따를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