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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중훈의 세상스크린]"그 사람은 運이 좋아"

입력 | 2000-07-24 18:31:00


1985년 여름, 합동영화사에서 이황림 감독님의 잔심부름을 하며 호시탐탐 영화배우 데뷔의 기회를 노리던 시절, 같은 영화사 4층 옆방에선, 긴 머리에 뭐가 그렇게 불만인지 무뚝뚝한 표정의 조감독 한 명이, 답답한 듯 영화사를 왔다갔다 하곤 했습니다.

당시 히트했던 성인에로영화 ‘애마부인’의 조감독이던 그는 말수가 적은 편이었지만 저를 보면 한쪽으로 불러내 영화의 열정을 토로하고 격려해주던 선배였습니다. 본인도 힘들면서….

▶ 성공 뒤엔 수많은 좌절

그 즈음 ‘미미와 철수의 청춘스케치’란 영화의 계약금을 받던 날, 동국대 후문 삼겹살집에서 대낮부터 소주를 거나하게 마신 이 선배와 저는 술자리가 끝날 무렵 훌륭한 감독과 배우가 되자며 부둥켜 안았습니다. 열정 하나로 갖은 어려움을 이겨낸 집념의 조감독은, 현재 한국영화계 최고의 감독, 제작자, 배급자, 기획자인 강우석 감독님입니다.

우석이형은 달변가에 유머감각도 풍부합니다. 요즘 우석이형에게 그때는 왜 표정이 그랬느냐고 물어보면, 하고싶은 말이 많았지만 참느라 그랬다며 웃습니다.

감독이 되고 싶어 시나리오를 들고 여기저기 헤매던 시절은 물론이고, 감독이 되고 나서도 우석이형은 무수한 시행착오를 거쳤고 좌절도 많이 하였으며 더러는 무시당한 적도 있었다고 합니다.

후배로선 좀 건방진 표현이지만, 전 누구보다 그의 성장과정을 잘 지켜본 편입니다. 우석이형은 데뷔작 ‘달콤한 신부들’ 이후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등 여러개의 좋은 작품을 만들었습니다. 그 중 1993년 한국에서 가장 힘들고 여유없던 영화사 ‘강우석 프로덕션’을 세워 지금 한국에서 가장 실력있고 탄탄한 영화사 ‘시네마 서비스’로 키우기까지 ‘투캅스’ 시리즈와 ‘마누라 죽이기’의 대중적 성공은 결정적 초석이 되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 초석위에 제가 함께 있었기 때문일까요? 제가 우석이형의 어려웠던 모습을 보아왔기 때문일까요? 올챙이 시절, 꼬리를 감추고 앞다리를 키우며 개구리가 되기위해 와신상담했던 형의 아픔과 노력은 뒤로 한 채, 올챙이 때와 개구리가 되어버린 지금의 형을 단순비교하여 투정도 많이 부리고 결례도 많이 한 것 같습니다. 마치 형의 영광이 곧 저의 영광인 양 착각하며….

▶ 남 인정할 줄 알아야

누구보다 형을 인정해줘야 할 제가, 세상 사람들이 다 인정하는데도 오히려 그렇지 못했던 겁니다. 내 성공은 노력의 결과이지만, 남의 성공은 그저 운이 좋아서라는 그릇된 모순이 제 마음속에도 있었던 것입니다. 남을 인정할 줄 알아야 자기 또한 인정 받을 수 있는 데도 말입니다.

얼마전 강우석 ‘개구리형’에게 가슴을 열고 저의 오만을 진심으로 사과했습니다.

“괜찮아 중훈아! 나도 너를 그렇게 생각했었으니까. 이제부턴 나도 안 그럴께.”

“?!?!?!!!!…”

joonghoon@seromesoft.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