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외 경제 현안을 중심으로 최근 한세대를 정리해 보면 10년 단위로 서로 다른 큰 테마들이 지배해 왔음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70년대는 중동 지역의 정세불안으로 야기된 석유 파동이 지배했던 시대라고 할 수 있다. 급격한 유가인상은 세계경제에 큰 타격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석유 수요의 전량을 해외에 의존하고 있는 우리 경제에 미친 영향은 가히 국가위기라고 할 만큼 심각했다. 80년대의 테마는 외채위기였다. 종속이론 매판자본 등의 용어 등장과 함께 국내에서도 눈덩이처럼 불어난 외채로 인한 경제의 종속성에 관하여 위기의식을 느낀 시대였다.
90년대의 테마는 환경문제와 디지털 혁명으로 시작됐다. 화석연료 사용을 제약하는 기후변화협약을 필두로 선진국들은 환경문제를 가히 경제질서를 재편할 새로운 현안으로 부각시켜 놓았다. 또 신경제로 대표되는 정보통신 혁명도 기존 경제의 패러다임을 온통 바꿔 놓을 정도로 위력적이었다.
2000년대의 첫해를 맞아 다시 국제 원유가격이 심상치 않다. 지난해 초 배럴당 10달러선에 불과하던 원유가격이 올해 한때 34달러(서부텍사스 중질유)를 넘어서더니 1년 넘게 25달러에서 30달러를 오르내리고 있다. 세계경기 회복에 따른 수요 증가와 재고 감소 등 국제 석유수급 구조를 볼 때 고유가 현상은 지속될 것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배적인 의견이다. 바야흐로 세계경제는 다시 본격적인 고유가 시대를 맞고 있는 것이다.
고유가 행진은 우리나라 경상수지에 직격탄을 날리고 있다. 1·4분기 에너지 수입 규모는 지난해 41억달러보다 120% 늘어난 91억달러에 이르고 있다. 고유가에 둔감한 국내산업구조를 감안할 때 올해 에너지 수입액은 사상 최대인 400억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물론 이렇게 되면 120억달러의 올 경상수지 흑자 목표 달성도 어려워질 것이다.
문제해결은 에너지 소비감소와 이에 따른 수입감소이다. 하지만 소비감소는 절약운동 같은 캠페인으로는 한계가 있다. 경제 주체들을 에너지 저소비 산업구조와 절약형 소비패턴으로 유도할 인센티브가 필요하다. 현 경제질서 하에서 이러한 인센티브를 제공할 수 있는 것은 가격이다. 즉 에너지가격 인상을 수반한 관련 세제개편은 에너지 절약을 위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동안 우리나라의 에너지 가격정책은 정부의 저에너지가격 정책과 공기업에 의한 계획된 공급으로 요약될 수 있다. 저에너지가격 정책은 에너지라는 생산요소의 비용을 낮춰 단기적으로 산업경쟁력을 높이자는 취지지만 장기적으로는 산업구조를 왜곡시킨다. 즉 값싼 생산요소인 에너지를 많이 이용하는 에너지 다소비 경제구조로 인해 고유가와 같은 외부변화에 근본적으로 취약한 경제 기반을 갖게 된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에너지 다소비 경제구조가 대기오염문제와 직결된다는 것이다.즉 저에너지가격 정책은 온실가스 등을 대량 배출하는 공해 유발형 산업구조를 유발하게 되고 이런 산업구조는 기후변화협약과 같은 국제환경 규제에 치명적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에너지 절약과 상반되는 산업용 에너지의 우대가격정책이나 일부 수송용 에너지의 인위적인 저가정책은 장기적으로는 국가 경제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최근 정부는 적극적인 에너지절약을 위해 에너지 세제개편을 통해 에너지 가격을 현실화하겠다고 밝혔다. 에너지 세제개편은 에너지를 소비할 때 발생하는 환경오염이나 교통혼잡과 같은 외부성으로 인한 시장실패를 치유하는 방향으로 과세기준을 확립해야 한다. 또 에너지 절약 및 오염저감 기술에 대한 투자를 촉진할 수 있도록 개편돼야 한다. 두 경우 모두 에너지 가격인상은 필연적이다.
물론 세제개편을 통한 에너지 가격 인상은 산업에 따라 단기적으로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하지만 국제경제질서의 흐름이 에너지 다소비 및 공해 다배출 경제구조가 살아남지 못하는 추세로 선회하고 있는 상황에서 에너지 절약을 위한 단기적 부작용은 극복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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