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헌재(李憲宰)재정경제부장관의 현대그룹 관련 한마디가 금융시장에 일파만파의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장관은 최근 전국경제인연합회 세미나에서 “현대건설 워크아웃 임박설은 사실이 아니며 자금난도 심각하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나 시장은 이장관의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현대건설이 워크아웃도 적용 받지 못하는 것으로 해석했다. 설상가상으로 한국기업평가가 현대건설 등 일부 현대 계열사들의 신용등급을 투기등급으로 낮췄다. 시장의 불안은 당연히 증폭됐다.
종합주가지수는 24일 45포인트나 추락해 ‘블랙먼데이’ 악몽을 떠올리게 만들었고 현대건설 주가는 하한가 수준까지 곤두박질했다. 현대건설에서 촉발된 유동성 위기가 전체 자금시장에 악영향을 줄 것이라는 위기감마저 다시 대두됐다. 시장은 이장관의 말을 현대에 대한 경고로 받아들인 것이다. 한 펀드매니저는 “현대그룹이 시장에 공언한 자구노력을 이행하지 않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 것으로 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 정주영(鄭周永)전 현대명예회장이 공표한 총수 일가의 경영일선 퇴진은 공염불이 되고 있다. 정 전 명예회장은 최근 북한에 가서 개발사업 조인식에서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과 나란히 서명했다. 주주 자격으로 서명했다고 풀이할 수밖에 없다.
또 현대자동차의 계열 분리도 공정거래위원회와 힘 겨루기를 하며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 그룹의 자금난은 물밑에서 세찬 소용돌이를 일으키며 언제든지 수면으로 떠오를 수 있는 사안으로 꼽히고 있다.
시장에선 현대나 정부를 난형난제(難兄難弟)로 보고 있다. 시장을 볼모로 버티는 현대나 특정 기업을 거론하는 정부 모두 바람직하지 않다는 얘기다. 파문이 확산되자 이장관은25일 기자간담회에서 “모두가 신경쇠약인 것 같다”며 자신의 발언을 확대해석하지 말라고 강조했다. 금융시장이 신경쇠약에 걸릴 만큼 취약한 것은 사실인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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