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자꽃 향기 코끝을 스치더니' '이태백이 없으니 누구에게 술을 판다?' 이병한 엮음/민음사 펴냄/1권 228쪽 2권 200쪽 각권 1만원▼
한시(漢詩)에 대하여 조금이라고 관심이 있는 사람에게는 이 두 권의 책은 정말 새롭고 값질 것이다. 부제에서 보여주듯이 '서울대 교수들과 함께 읽는 한시명편'. 서울대 중문학과 명예교수인 창석(蒼石) 이병한(李炳漢)교수가 당송대의 이백 두보 백거이 소식 구양수로부터 명청대의 서위 운수평 이방응에 이르기까지 한수 180수를 계절별로 꼼꼼히 정리한 것이다.
당호(堂號)가 자하헌(紫霞軒)인 이 방은 서울대 인문대교수 휴게실. 자하헌 화이트보드에 李교수가 92년경부터 1주일에 두어 차례씩 역대 중국의 명시를 한편씩 쓰기 시작한게 이 책이 나오게 된 계기이다. 한담을 나누다가도, 바둑을 두다가도, 하나 둘씩 흥미를 갖기 시작하면서 지식인 특유의 패러디가 등장하는가 하면, 시에 대한 촌평과 원전의 풍격을 넘어서는 감칠맛 나는 번역들이 이어진다. 이 책에는 교수들의 실명이 곧잘 등장해 더욱 재미있다. 마치 우리가 자하헌의 화이트보드를 보고 있는듯하다.
李교수는 문어체적 번역이나 고색짙은 수사들을 탈피하고 있어, 젊은 세대들이 읽기에도 부담이 없고 자연스럽다. 평생 중국 한시 연구에 몰두해온 노학자의 그윽한 통찰과 풍부한 감성은 각 시편에 덧붙인 해설을 읽으면 금방 알 수 있다. 상세한 각주와 넉넉한 감상, 본문을 보충하는 참고시들은 한시라면 머리부터 젓고 보는 우리들에게도 훌륭한 안내자가 되어줄 것이다.
사대주의가 아닌, 그윽한 문학의 세계로 삼복더위에 독서삼매경에 빠져보자. 마음에 드는 시가 있으면 큰소리내어 낭독해볼 일이다.
최영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