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금시장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정부가 또다시 초대형 펀드 조성이라는 처방을 내렸다. 시장에서는 ‘아직 1차 10조원 펀드도 마무리 안된 마당에 어떻게 10조원을 더 모을 수 있느냐’며 정부의 조급성에 대해 회의적인 반응이다.
재정경제부와 금융감독위 등 정부내에서도 ‘전가의 보도’처럼 여기는 10조원 펀드 조성의 실효성에 대해 이견이 엇갈리고 있는 상황. 당장 자금 조성 과정에서 ‘신관치 금융’이라는 논란을 불러 올 수 있다. 또 초대형 펀드가 당장 위기를 모면할 방법은 될지 몰라도 부실을 2년간 더 연기하는 임시 처방이 아니냐는 문제점도 함께 제기되고 있는 것.
▽당장 ‘발등의 불끄기’에 급급〓당초 이달말까지 조성하기로 한 10조원은 돈을 내는 은행과 보험사들의 소극적인 참여와 정부가 ‘시키는 일’에는 미온적인 시장 참여자들의 태도로 이달말까지 5조원의 자금을 모으기도 빠듯한 상태. BB등급 회사채와 기업어음 소화를 위해 발행시장 채권담보부 증권(프라이머리CBO)을 만들고 신용 보강 장치까지 마련했지만 기업금융을 하지 않는 은행들은 마치 남의 일인 양 ‘왜 우리가 여기에 돈을 처박아야 하나’라며 발뺌하고 있다.
금감위나 재경부에선 채권형펀드를 철저하게 상업적 베이스에 따라 운용하기 때문에 금융기관에 ‘팔을 비틀어’ 강요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강조한다. 이헌재(李憲宰)재경부장관이 은행장을 겨냥해 ‘제 발등을 찍지 말라’고 으름장을 놓은 것도 현대그룹 채권 회수뿐만 아니라 채권펀드 조성에 뜨뜻미지근한 반응을 보이고 있는데 대해 분노했기 때문이라는 전언이다. 채권 만기가 돌아오는 2년 이후로 목숨만 연장하는 꼴이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참여자들 반발이 문제〓은행과 보험사들이 지금까지 30%가량의 협조만 보이고 있는 가운데 이장관의 10조원 추가 조성 발언은 돈을 내야하는 기관들의 반발을 더욱 부추길 가능성이 높다. 금융회사들은 “10조원펀드가 성공하려면 정부가 신용보강 장치를 높여줘야 하는데도 파국을 맞지 않으려면 알아서 행동하라는 식으로 윽박지르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추가 10조원펀드는 여유자금이 넘치는 체신예금과 연기금 등을 동원할 예정이지만 관련 부처의 반발이 예상된다.
▽실효성 얼마나〓정부관계자는 “문제가 되는 H, S, U그룹 등의 채권을 이 펀드에서 얼마나 편입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6대 이하 그룹 회사채 만기물량이 연말까지 10조원어치인데 20조원펀드를 만들어도 기껏해야 BB급 이하 채권은 3조∼4조원 정도 넣는데 그칠 것”으로 내다봤다. 프라이머리CBO를 발행한 LG투자증권 관계자는 “은행은 돈내기 싫어하고 보증기관들은 보증 재원을 마련하기 어렵다고 하소연한다”며 “정부 생각과 시장 반응이 너무나 달라 어려움이 많다”고 하소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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