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첫 날치기’로 기록될 국회법 개정안 파동 중에 여야 의원들 사이에선 웃지 못할 소극(笑劇)이 곳곳에서 벌어졌다. 24일 날치기에서부터 26일 각당 의원총회까지 있었던 일화를 정리해 본다.
▽초선의 설움〓24일 국회 운영위 회의장. 위원장석으로 진입하려다 한나라당 의원들에게 밀려 뒷걸음질치던 민주당 정균환(鄭均桓)원내총무는 문득 뒤를 돌아보고 화가 머리까지 치밀어 올랐다. 4선의 자기는 몸싸움에 여념이 없는데 같은 당 초선의원인 이호웅(李浩雄) 송영길(宋永吉)의원은 방청석에 앉아 있지 않은가. 순간 “초선들이 뭐하고 있는 거야”라는 벼락 같은 정총무의 고성이 터졌고 두 의원은 그때서야 벌떡 일어나 몸싸움에 가세.
같은 날 같은 현장. 역시 초선인 한나라당 윤두환(尹斗煥)의원은 민주당 정총무에게 “당신 뭐하는 사람이야”라고 소리쳤다. 정총무가 험악한 표정으로 “당신 누구야”라고 맞고함쳤지만 윤의원은 “나, 윤두환이다”고 대답. 보다 못한 민주당 이희규(李熙圭)의원이 “초선답게 말조심하라”며 말렸지만 윤의원이 “당신이나 조심하라”고 맞받아치자 같은 초선인 이의원은 자신의 지방의회 의원 경력을 내세우며 “나는 3선급 초선”이라고 반박해 모두 폭소.
▽체면 구긴 의원들〓25일 서울 마포구 서교동 김종호(金宗鎬)국회부의장 자택. 김부의장이 300여명이 동원된 한나라당의 포위망을 뚫고 사라졌다는 소식에 아연실색한 한나라당 이재오(李在五)의원 등은 애꿎게 김부의장의 부인 한인수(韓仁洙)여사를 다그쳤다.
한여사가 “혹시 안방 화장실에 계신지 모르겠다”고 말끝을 흐리자 이의원 등은 잠긴 안방 문 손잡이를 열쇠 수리공까지 불러 망치로 뜯고 들어갔으나 허탕. 이에 한여사는 “해도 너무 한다”고 항의.
한나라당 김홍신(金洪信)의원은 김부의장을 찾기 위해 지붕 위에 올라 두리번거리는 사진이 ‘지붕 위의 의원’이라는 제목으로 신문에 대서특필. 자민련 정진석(鄭鎭碩)의원도 한나라당 사무처 직원들의 제지를 피해 담을 넘어 김부의장 자택으로 들어가는 장면이 TV에 보도돼 톡톡히 망신.
▽대치 정국의 스타〓한나라당에선 자택을 탈출한 김부의장이 잠적하기 직전에 그를 ‘검거’한 사무처의 윤상진(尹相鎭)차장이 일등 공신. 26일 총재단회의에서 김기배(金杞培)사무총장은 “윤차장이 당을 위기에서 구했다”고 치하.
한나라당 김학송(金鶴松)의원도 날치기 당시 겹겹이 둘러싸여 있던 민주당 천정배(千正培)수석부총무에게 3m 정도 몸을 날리면서 제지, 당성(黨性)을 높이 평가받았다는 후문.
반면 민주당에선 야당 의원들의 철벽 저지에도 불구하고 가슴속에 품고 있던 의사봉을 꺼내 국회법 개정안 처리절차를 밟게 한 박준(朴峻)의사부장이 영웅. 99년 1월 3일 연속 날치기 때도 결정적 공을 세웠던 박부장은 주위의 격려에 “한두번도 아닌데…”라며 머리를 긁적.
‘신사 의원’으로 뽑히기도 했던 천수석은 날치기 주역을 맡은 데 대해 “당직을 맡아 언젠가 겪을 일이라고 생각했다”며 애써 위안.
한편 민주당 송석찬(宋錫贊)의원은 26일 의원총회에서 “자민련이 교섭단체를 구성하기 위해 의원 한명이 더 필요하다면 이 한 몸 희생할 용의가 있다. 언제든지 자민련에 가서 완전한 공동정부를 이룬 뒤 돌아올 수 있다”고 엉뚱한 애당심을 과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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