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년만에 만난 사형수와 아들은 본능적으로 서로를 끌어안은 채 말이 없었다. 한참 뒤 아들이 먼저 북받치는 감정을 억누르며 말문을 열었다.
“건강은 괜찮으신지요. 아버지를 용서합니다. 이렇게 서로 만날 수 있게 된 사실에 감사합니다.”
“아버지로서 네게 할말이 없다.”
27일 오후 2시40분경 광주 북구 문흥동 광주교도소 특별접견장. 이 교도소에 수감돼 있는 사형수 성모씨(52)와 어머니 성(姓)을 따른 아들 도진철씨(미국명 에런 베츠·27·미 육군 하사·애리조나 거주)의 극적 상봉이 이뤄졌다.
그러나 세월의 간격이 너무나 크기 때문일까. 이들 부자는 서로 손을 꼭 감싸쥔 채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성씨는 1973년 아내가 아들을 낳은 지 닷새만에 입대, 여섯달만에 부대 면회소에서 이 아들의 모습을 마지막 본 후 이날 처음 만났다.
이들이 생이별을 하게 된 것은 고아 출신인 성씨가 군복무중 아내가 담석증 수술을 받다 숨지는 바람에 졸지에 갈 곳이 없게 된 아들이 광주의 한 영아원에 맡겨지고 이어 여섯 살때인 79년 미국으로 입양됐기 때문.
영아원 수용 시절 어머니의 성을 딴 이름을 얻은 진철씨는 미국 애리조나주립대에 다니던 96년 미 육군에 입대한 뒤 아버지를 찾기 위해 주한 미군 근무를 자원했다.
한편 아버지 성씨는 94년 서울 하월곡동 ‘여관집 모녀살해사건’으로 사형을 선고받고 복역하던 97년 초 신문을 통해 혈육을 찾는 한국계 미군 병사가 자신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지만 사형수의 몸으로 나설 용기가 없었다.
성씨는 지난해 9월경 교도소에 의료봉사 활동을 나온 한 의사에게 자신의 사연을 털어놓았으며 이 의사는 미국내 친구에게 부탁해 수소문 끝에 아들의 행방을 찾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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