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서 장교로 복무하다 탈출해 1년 전 한국으로 건너온 김성민씨(38·연세대 국문학3년)가 서울의 친척집에 갔을 때였다.
“식사합시다.”
밥상을 받고 웃어른에게 이렇게 말했더니 일순 분위기가 썰렁해졌다.
“북한에선 그 말이 김일성 수령에게도 쓸 수 있는 극존대어입니다. 알고 보니 이곳에서는 ‘하대’의 뉘앙스가 있다는군요.”
말투의 차이는 차라리 낫다. 남북에서 ‘다르게’ 쓰인다는 걸 알면 금방 이해가 되기 때문이다.북한출신 사람들이 견디기 어려워하는 건 ‘남북은 서로 다르다’는 강한 선입관. 북한사람들이 촌스럽고 투박하며 거칠다고 간주하는 것이야 어쩔 수 없지만 아직도 뿔 달린 괴물 취급을 하거나 턱없이 우월감을 갖는 고정관념은 정말 문제라고 입을 모은다.
연예인이 된 김혜영씨(25)와 결혼정보회사 선우의 커플매니저로 일하는 동생 김순영씨(24)의 경우.
한국에서의 첫 1년여는 당황의 연속이었다. 북한이 지상낙원은 아니지만 생지옥도 아닐진대 너무 무시할 때는 괴롭기까지 했다.
“에버랜드를 갔더니 ‘이런 거 보기나 했느냐’는 식으로 우리를 쳐다보더라고요. 북한에는 면적도 훨씬 넓고 기구나 시설도 많은 만경대 유희장이 있는데 말이죠.”
김성민씨는 영화 ‘쉬리’도 원망스럽다고 말했다.
“아무리 인민군을 모른다지만 사람을 사이에 놓고 사격하는 법이 어디 있습니까. 북한사람을 살벌한 야만인 취급하는데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사실 어찌 보면 그쪽이 더 순진하고 감성적일지 몰라요.”
탈북자들은 명분상으로는 당에 대한 충성이 최고의 가치이지만 가정을 소중하게 여기는 것은 북한도 이곳과 다를 바 없다고 말한다. 부모가 자식에게 ‘대학입학시험’을 잘 봐야 좋은 대학에 가지 않겠느냐고 야단치기도 하고 생일이면 식구들끼리 냉면 한 그릇씩 먹으며 축하해 주고….
북에 두고 온 부모형제 생각이 제일 간절한 이들에게 “사상이 안 좋으면 가족들끼리 비판하고 심하면 신고도 한다면서요”와 같은 물음은 그야말로 쓴웃음을 짓게 한다.
전 북한축구대표팀 감독 윤명찬씨의 딸 혜련씨(24)는 남한의 또래들로부터 “가족과 이웃이 서로 감시한다는 5호 감시제가 정말 있느냐”는 물음을 자주 듣는데 그런 제도는 보지도 듣지도 못했다며 억울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또 하나. 북한사람들이 가장 싫어하는 말이 있다. “얼마나 못 먹고 살았느냐”는 말. 김성민씨는 “북한 사람들은 자존심 빼면 시체”라며 “우리는 단지 헤어져 살았을 뿐 같은 민족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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