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닥지수가 급전직하하면서 벤처신화가 빠르게 무너지고 있다. 석달 전만 해도 지수 300선은 무난히 돌파할 것으로 내다봤던 증시전문가들도 꼬리를 슬며시 내리고 닷컴위기론이 거세게 확산되는 것을 보고만 있는 형편이다.
거금을 챙긴 큰손들은 이미 떠난 것 같은 시든 장세에서 개인 투자자들만 남아 손해 줄이기에 허덕거리고 있다. 수십명의 30대 갑부를 양산했던, 황금고기가 마구 뛰놀던 코스닥이 일장춘몽의 옛터로 황폐화되지는 않을까 우려된다.
그러나 진정한 시작은 지금부터다. 벤처와 코스닥은 한국 국민에게 시장경제의 논리를 가르쳐준 학습의 장이다. 민주주의를 회복하는 과정에서 우리가 얼마나 엄청난 희생을 치렀는지를 생각해 보면, 관주도 경제에 매달려온 우리가 시장경제를 정상화하는 과정에서 그 정도의 희생을 치르지 말라는 법이 없다.
어찌 보면 정경유착, 정부지원, 부정과 비리 등의 비시장적 행위를 통해 돈을 벌어왔던 우리가 시장경제의 논리에 적응하는 것은 민주주의를 회복하는 것보다 훨씬 어려운 과제일는지 모른다. 시장은 투자자들의 욕심이나 기호와는 상관없이 나름대로의 논리로 작동하는 냉혹한 기제(機制)이기 때문이다.
금융여건이 호전되지 않는 한 벤처기업은 당분간 고통스러운 세월을 맞을 것으로 예상되는데 시장경제의 진정한 면모를 배우는 학습비용 치고 이 정도의 시련은 싼 편이다.
30대 갑부들도, 코스닥 진입을 꿈꾸는 수많은 벤처인들도, 또는 벤처기업이 쌈짓돈을 두배 세배로 늘려줄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았던 개미군단들도 시장경제의 진면목이 무엇인지, 도대체 ‘보이지 않는 손’이란 무엇을 뜻하는지 체득할 기회도 없었고 지식도 없었음을 인정해야 한다.
미국 자본주의의 첨병인 하버드대 경영대 졸업식장은 100달러 지폐를 일제히 흔들어대는 학생들로 가득찬다. 그 광경을 보고 ‘상스러운 미국인’들이라고 생각했던 필자는 그것이 시장과 싸울 준비가 됐음을 알리는 몸짓이자 어떤 자본 투자에도 이윤을 보전할 수 있다는 자신감의 표시라는 것을 뒤늦게야 깨달았다. 예일대의 경제학 강의는 학생들에게 10달러 정도의 주식을 사서 한 학기 동안 주가 변동의 원인을 분석하도록 과제를 부과한다.
서부 활극으로 사유재산을 일궈온 나라답게 항상 널뛰는 금융시장의 불안정성을 파헤치는 실용적 혜안을 일찍부터 그들의 자손들에게 전수하는 셈이다. 그렇다면 테헤란로의 서울벤처밸리에 진을 치고 있는 우리의 벤처인들과 미래의 벤처지망생들은 시장경제를 어디서 배웠을까. 대학에서, 혹은 가정에서, 아니면 국제통화기금(IMF) 사태?
그러나 희망을 잃는 것은 금물이다. 필자는 지난 봄 일본에서 그 희망을 목격했다.
온갖 생활필수품 광고로 얼룩진 지하철 홍보물에 닷컴기업 광고는 단 하나뿐이었는데 그것도 일본인들의 촌스러운 패션처럼 초보적인 아이디어에 불과했다. 물론 일본의 산업잠재력을 무조건 깎아 내리려는 위험천만한 발상에서만은 아니다. 일본의 젊은 기업인들은 아직 ‘Japan.Inc’ 신화에 집착하여 ‘Japan.com’으로 건너뛰기를 주저하는 듯했으며 철지난 장기(長技)로 잘나가던 옛날을 회복하려는 보수적인 분위기를 읽었다는 말이다.
이에 비하면 IMF 사태는 한국의 패기 있는 기업인들에게 단절적 도약을 위한 절호의 기회였다. 사실 IMF 사태는 전통적 수법의 한계를 뛰어넘으라는 뼈아픈 계시였는데 한국의 벤처는 그런 위기의 와중에 태어난 것이다. 벤처는 위기의 아들이자 김대중정권의 위기관리정치의 소산이다.
여건이 조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벤처기업이 이만큼 성장했고 정보화시대를 이끌어 갈 신산업자본과 신산업마인드가 이 정도로 정착됐다는 것은 또 다른 한강의 기적을 알리는 신호이다. 이는 결코 필자만의 견해가 아니라 세계의 유수한 경제학자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괄목할 만한 한국적 현상이다. 따라서 코스닥이 급전직하하고 금융시장이 불안하다고 투자보따리를 무작정 싸는 것은 동반자살행위이다.
시장을 미덥지 않게 보았던 케인즈도 투자자들의 불신이 시장의 불안정성을 촉발하는 제1의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불안할 때에 더욱 믿어주는 것, 그것이 ‘위기의 아들’에게 돌파력을 부여하는 최선의 방법이다.
송호근(서울대교수·사회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