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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구연의 야구읽기]박찬호 '제구력과의 전쟁'

입력 | 2000-08-01 18:39:00


감독이 가장 싫어하는 게 볼넷이다. 상대에게 ‘공짜 티켓’을 주게 되니 힘이 쭉 빠질 수 밖에 없다. 오죽하면 볼넷에 벌금까지 물리는 코치가 있었을까.

박찬호는 지난달 31일 필라델피아전에서 볼넷 때문에 무너졌다. 그날 아침 호텔의 화재경보기가 잘못 울려 잠을 제대로 못 잤고, 섭씨 30도가 넘는 불볕 더위에 투구 밸런스가 무너지면서 볼넷을 남발했다.

7회말 2―2 동점 상황, 2사 주자 2루에서 3, 4, 5번 세 타자에게 연속 볼넷을 허용해 밀어내기 결승점을 주고 말았으니 본인은 물론 다저스 멤버들도 어이가 없었으리라. 중심타선에게 한방 맞으면 질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위기를 넘겨야 한다는 강박 관념이 가져온 결과다.

실제 박찬호의 투구를 유심히 지켜보면 키킹 후 오른 무릎의 각도와 리듬이 어떻게 이뤄지느냐에 따라 차이가 남을 알 수 있다. 물 흐르듯 리드미컬한 중심 이동을 유지하는 것이 투수에겐 가장 중요한데 잡념, 과욕, 체력 저하 등은 균형을 깨뜨리는 요인이 된다.

이제 우리 팬들은 박찬호 하면 강속구와 함께 볼넷을 떠올리게 됐다. 그러나 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고 본다. 메이저리그 최정상급 왼손투수인 뉴욕 메츠의 알 라이터는 6, 7년 전만 해도 박찬호보다 훨씬 나쁜 제구력의 소유자였다. 제구력은 누구의 가르침보다는 스스로 몸에 배도록 해야 하는데 누구보다도 영민한 박찬호는 분명 해낼 수 있으리라고 필자는 굳게 믿고 있기 때문이다.

(야구해설가) koufax@neti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