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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약분업 첫날]어느 할머니의 고통 "왜 藥이없어요"

입력 | 2000-08-01 19:13:00


“취지는 좋을지 몰라도 이거 어디 불편해서 약을 제대로 사 먹겠나….”

평소 오른쪽 무릎에 류머티즘을 앓아오던 김재숙 할머니(익명·71·경기 안양시 안양3동)는 의약분업이 전면 실시된 1일 오전 5시반 잠자리에서 깨어나면서 욱신거리는 무릎을 움켜쥐었다. 남편 이은철씨(72)의 부축을 받아 간신히 자리에서 일어선 김씨는 예전에 서울의 신촌세브란스병원에서 받은 약을 뒤적였지만 이전보다 통증이 심해져 아무래도 병원 진료를 다시 받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김씨가 남편과 신촌세브란스병원을 향해 집을 나선 것은 오전 8시45분. 택시로 국철 안양역까지 이동해서 전철을 타고 이 병원 근처 지하철역에서 내려 다시 택시를 탔다.

병원에 도착한 시간은 오전 11시경. 전공의들이 파업한다는 소식을 듣긴 했지만 외래환자가 많지 않아 다행히 금방 진료를 받을 수 있었다. 이전의 류머티즘이 재발했다는 의사의 진단이 나왔다.

처방전을 받아 쥔 김할머니는 예전에 하던 대로 병원 내 약국으로 향했다. 그러나 병원에서 약을 지어줄 수 없다는 설명이었다.

“예전에는 그냥 약 주더구만…. 아무튼 이걸 들고 약국에 가면 약 주는 거야?” “예, 할머니. 병원 근처에 큰 약국 대여섯 곳이 있으니까 참고하시고요.”

인근 약국 약도를 받아든 김씨 부부가 병원을 나선 시간은 오후 1시경. 점심도 거른 채였다. 그러나 병원 근처 약국은 류머티즘 환자가 걸어서 가기에는 거리가 만만치 않은데다 안양 집 근처에 단골 약국이 있어 동네 약국을 이용하기로 했다.

김씨 부부가 다시 전철을 타고 안양역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2시15분경. 하지만 집 부근의 단골 A약국은 7월30일부터 휴가로 문을 닫았다.

그래서 떠올린 곳이 안양시내에 있는 대형 약국. 연방 쑤시는 무릎 때문에 더 이상 버틸 수가 없던 김씨는 집에 들어가고 남편 이씨가 택시를 잡아 타고 시내 대형 약국 가운데 한곳인 R약국에 갔다.

그런데 처방전에 있는 약은 재고가 바닥났다는 약사의 응답이었다. 이 약국의 약사는 “그렇지 않아도 주문을 해놓았으니 내일 오후 늦게 다시 나오라”고 말했다.

다시 서울까지 가서 약을 산다는 것이 아득한 이씨는 약을 구하지 못하고 빈손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그 때가 오후 3시.

결국 김씨는 새 처방에 따른 약을 먹지 않고 하루를 견뎌내야 했다.

부부는 2일 신촌세브란스병원에 치료차 다시 들르는 길에 병원에서 일러준 인근 대형 약국에서 약을 구입하기로 한 것이다.

“의약분업이 건강을 위해 좋은 제도라고 하던데 이렇게까지 약을 구하기가 힘들어야 원….”

온종일 돌아다녔지만 약을 구하지 못한 김씨는 아픈 무릎을 연방 두드려대며 혀를 찼다.

dd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