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 감옥살이 동안 꾹꾹 삭혔던 말이 그리 많았을까. 98년 석방된 뒤 여러 매체에 쓴 잡문을 주섬주섬 모으니 너끈히 책 한권이 됐다. 지난 반세기 자의반 타의반으로 한국 현대사의 굴곡을 몸으로 겪은 작가의 세상살이 이야기가 빼곡하게 담겼다.
여전히 민족문제와 씨름하는 그의 ‘집착’은 젊은 세대에겐 촌스러게 보일 정도로 진지하다. 21세기 구미열강이 주도하는 적자생존의 정글에서 아들 딸이 살길은 ‘평화협정 체결’ 밖에 없다는 소신을 여러 글에서 강조하고 있다.
그가 뒤늦게 전하는 에피소드 한가지. 1차 범민족대회 때 평양 시내를 행진하던 중 밀려든 군중에 할머니가 깔리는 돌발사고가 터졌다. 불상사를 막아보려던 그는 한 청년의 어깨위에 올라타서 ‘사람 죽어요!’ 외쳤다. 이를 두고 북한 방송은 ‘투쟁을 절구하는 남조선 작가 황석영’으로 둔갑시켰다. 다시 이 장면은 남한 예비군 훈련 정신교육 비디오에서 ‘좌경 용공분자의 광기’로 묘사됐다. “남북 문제에 ‘객관적’인 시선이란 있을 수 없다. 세월이 갈수록 재생산되는 분단의 ‘내면화’가 더 심각한 문제다”.
시론적인 글외에도 자신의 문학론에 대한 정제된 입장을 담은 글도 상당수 포함되어 있다. ‘오래된 정원’을 비롯해 앞으로 그가 펼쳐보일 작품의 ‘외전’(外傳)으로 봐도 무방할 듯 싶다. ‘황구라’라는 별명이 허명(虛名)이 아님을 증명하듯 거침없는 ‘이바구’도 여전하다.
▼'아들을 위하여'/ 황석영/ 이룸/ 219쪽 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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