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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도종환/영혼의 소리를 내는 오줌독

입력 | 2000-08-06 18:53:00


경남 남해 보리암에 갔습니다. 안개비가 뿌리는데 법당 안팎을 가득 메우고 서서 반야심경을 독송하는 불자들의 목소리가 바위와 나무와 사람들의 가슴속을 꽉 채우고는 물결처럼 바다로 밀려 내려갔습니다.

고개를 돌리면 일점선도(一點仙島)를 품어 안은 바다가 그림처럼 눈에 들어오는 법당 옆에는 범종이 있었습니다. 종의 몸에 새겨져 있는 ‘천변운외차종성(天邊雲外此鐘聲)…일념불생유미명(一念不生猶未明)’처럼 하늘가 구름 너머에까지 울리는 범종 소리를 듣고도 한 생각이 일어나지 않는 것은 아직도 어둠 속에 있는 것과 같다는 뜻이겠구나 생각하면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종 밑에 항아리가 묻혀 있습니다.

함께 간 ㅈ시인과 같이 범종 밑의 항아리를 이리저리 살펴봤습니다. 삼라만상, 그 중에서도 인간의 영혼을 위해 아프게 울리는 종소리를 잘 받아 온 산과 바다에까지 맑고 힘차게 전하는 역할을 하는 항아리의 이야기가 바로 ㅈ시인의 동화 ‘항아리’에도 나오는지라 더욱 반가웠습니다. 내용은 이렇습니다.

독짓는 젊은이가 처음 만든 항아리는 썩 잘 만들어진 항아리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아래 위가 좁고 허리가 두둑한 항아리로 태어난 자기 자신을 항아리는 대견스럽고 기쁘게 생각했습니다. 항아리는 누군가를 위해 그 무엇을 위해 쓰여지는 존재가 되고 싶었지만 뒷간 마당가에 방치돼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가을 날 젊은이가 삽을 가지고 와 항아리를 땅 속에 묻었습니다. 항아리는 이제서야 남을 위해 쓰여질 수 있는 존재가 된다는 사실에 가슴이 두근거렸습니다. 그러나 항아리는 오줌독이 되었습니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사람들은 오줌을 누고 갔고 가슴께까지 오줌을 담고 살았습니다. 그렇게 오랜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러던 어느 해 봄 폐허가 된 가마터에 사람들이 절을 짓기 시작했습니다. 몇 해에 걸쳐 절을 짓고 종을 달았습니다. 그런데 종소리가 탁하고 공허하다고 주지스님은 고민을 하였습니다. 그러다 항아리는 주지스님에게 발견되어 종각 밑에 묻히게 되었습니다. 항아리를 종 밑에 묻고 종을 치자 참으로 맑고 고운 소리가 울려나왔습니다. 항아리는 자기가 종소리가 된 게 아닌가 하고 착각할 정도였습니다. 오랜 세월을 참고 기다려 영혼의 소리를 내는 항아리가 된 것입니다.

못난 모습으로 태어나 오줌독으로 살아왔지만 마침내 범종 소리를 담아내는 공명통이 될 수 있었던 항아리. 이 세상에는 그런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권정생 선생은 ‘강아지똥’에서 “하느님은 이 세상에 쓸모 없는 물건은 하나도 만들지 않으셨다”고 했습니다. 버려진 강아지똥이 빗물에 잘게 잘게 부서지면서 땅 속으로 들어갔다가 결국 노란 민들레꽃을 피워 낸 이야기, 민들레꽃의 몸이 된 이야기를 우리는 아름답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신경림 시인은 일찍이 ‘우음’이란 시에서 “아무리 낮은 산도 산은 산이어서/봉우리도 있고 바위너설도 있고 골짜기도 있고 갈대밭도 있다…/아무리 낮은 산도 산은 산이어서/있을 것은 있고 갖출 것은 갖추었다/알 것은 알고 볼 것은 다 본다”고 하신 적이 있습니다.

낮고 하찮고 보잘것없어 보이는 것들에 대한 애정을 가져야 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가난하고 못생기고 천해 보이는 이들도 있을 건 다 있고, 알 건 다 알고, 볼 건 다 볼 줄 아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그래서 그가 외국인 노동자이건, 조선족 동포이건, 어린이이건 그들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인격적으로 만나고 평등하게 대해야 하는 것입니다.

통일논의가 활발해지면서 우리들 중의 어떤 사람들은 북녘 형제들을 비천하고 못난 사람 대하듯 하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하시는 말씀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동안 우리가 조선족 동포들이 사는 중국 땅에 가서 한 행동을 보고 하는 말씀이셨습니다. 그럴 수 있을 거라는 불안한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잊지 말았으면 합니다. 영혼의 기쁨으로 가득 찬 소리를 울려 보내는 범종 밑의 항아리도 오랜 옛날에는 오줌을 가득 담은 채 잔뜩 얼어붙은 가슴으로 한겨울을 나던 오줌독이었습니다. 오줌을 담아왔기 때문에 맑은 소리도 담아낼 수 있었을 겁니다.

도종환(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