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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탁환의 대중문화 째려보기]4백번의 구타를 당하는 김효진님께

입력 | 2000-08-06 21:20:00


효진님께

효진님은 오늘도 구타당하고 있습니다. 주말만 해도 스무 번은 턱이 돌아갈 것입니다. 이러다간 한 달도 넘기기 전에 4백 번을 충분히 채우고도 남겠습니다. 프랑스의 감독 트뤼포의 영화제목을 연상시키듯이, 효진님은 아침에도 맞고 낮에도 맞고 해가 진 다음에도 또 맞습니다.

효진님은 토요일 오후 MBC의 가요순위 프로그램에서 두 시간 동안 방긋방긋 웃으며 사회를 보셨지요. 탱크탑을 즐겨 입던 여가수들 중에는 배꼽을 드러낸 이가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살사를 추는 백지영의 상대 무용수는 엉덩이를 쭉 빼고 팔을 흔들었고, 베이비복스도 클레오도 초가을 분위기를 연출한 것은 마찬가지였지요. 문화부장관이 선정성을 문제 삼자마자 희생양이 되지 않으려는 자구책이겠지요.

효진님이 출연하는 드라마 'RNA'도 열심히 보고 있습니다. 비록 조역이지만 CF 스타의 한계를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치는 모습이 아름다웠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효진님의 얼굴을 볼 때마다 커다란 주먹이 날아듭니다. 아무리 침착하게 사회를 보고 연기를 해도, 잔뜩 일그러진 볼과 눈두덩이만 떠오를 뿐입니다. 혹자는 CF일 뿐이지 않느냐고, CF에서 자학적이거나 피학적인 CF가 나온 것이 어디 한두 번이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요.

그럼 효진님이 출연한 CF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살펴볼까요. 400번의 메시지를 공짜로 '날릴' 수 있는 것을 주먹을 '날릴' 수 있는 것으로 바꾸고, 메시지를 받고 여자의 마음이 '넘어가는' 것을 권투선수가 두들겨 맞을 대로 맞은 다음 '넘어가는' 것으로 바꾸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문맥과는 상관없이 '날린다'는 것과 '넘어간다'는 것을 메시지 전달에서 구타로 바꿔치기한 것이지요.

여기서 주목할 지점은 메시지를 받는(주먹을 맞는) 여자는 그것을 방어할 수 없다는(무작정 두들겨 맞을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효진님이 아무리 날렵하게 몸을 숨기거나 움직여도 날아드는 주먹을 피할 수 없지요. 링에서는 달아날 곳이 없는 법이니까요. 그리고 꼭 400번이라는 양적 개념을 도입한다는 점입니다. 한 두 대 때리고 마는 것이 아니라 여자가 완전히 넉다운 될 때까지 4백 번을 반드시 때려야 한다고 강조하고 또 강조하는 것이지요.

이 CF는 친구의 친구를 사랑한다에서 친구의 누나를 사랑한다로 또 남자 친구의 여선생님을 연적으로 느끼는 CF들과는 성격이 완전히 다른 것입니다. 말로 듣지 않으면 두들겨 패서라도 사랑을 쟁취하라는 봉건적인 관습이 떠오른 것은 저의 기우일까요? 이것은 배꼽티 하나로 선정성을 따지는 것보다도 훨씬 뿌리 깊고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물론 효진님이 CF 감독도 아니고 이미 준비된 CF의 내용을 변경할 위치도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모델로 스카우트되어서 연기를 한 것 뿐이지요. 압니다,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효진님은 앞으로 CF 뿐만이 아니라 연기자나 방송 사회자의 꿈을 꾸고 있겠지요? 그렇다면 자신의 이미지를 지금부터 가꾸어나가야 할 줄 압니다. 하루에도 너댓 번씩 턱이 돌아가는 효진님의 CF는 적어도 6개월 아니 1년 동안은 시청자들의 뇌리에 남을 것입니다. 앞으로는 CF의 선택에 신중할 필요가 있겠지요.

효진님이 400번이나 공개적으로 구타당하고 있는 이 CF에 대한 여성계의 반응을 기다리며 이만 줄입니다.

소설가 김탁환(건양대 교수) tagtag@kytis.konyang.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