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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채현경/음악회 초대권 사라져야

입력 | 2000-08-07 18:59:00


얼마 전 우리 음악계의 가장 열렬한 후원자인 금호그룹 박성룡회장과 바이올리니스트 배익환의 불협화음이 법원 소송에까지 이르러 많은 음악인들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이는 우리나라 예술 음악계에 무언가 근본적이고 혁신적인 변화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알리는 전주곡이다.

대부분의 사람이 음악이라고 하면 떠올리는 이른바 서양 예술음악은 늘 대중과 얼마간의 거리를 유지한 채 특수집단의 후원으로 특수층을 위한 특정인들의 문화였다.

그러나 전자매체의 발달에 힘입어 지난 세기 말부터 불어닥친 대중주의의 소용돌이 속에서 예술음악은 이제 그 본산지인 서구에서도 설 땅을 잃고 있다. 바흐와 브람스를 배출한 독일도 정규교육에서 음악시간을 줄이고 있다. 베를린의 교향악단 수가 1990년이래 7개에서 4개로 줄었고, 미국 메트로폴리탄 오페라하우스도 거의 10년째 심각한 재정난을 겪고 있다.

얼마 전 우리나라에 왔던 루치아노 파바로티를 비롯한 테너 3인방의 음악회가 예술극장이 아닌 초대형 야외행사장에서 열리는 모습은 서양 예술음악의 위기를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좋은 예다.

100년 남짓한 짧은 역사의 우리 예술 음악계는 더욱 심각하다. 그나마 서양식의 후원제도는 발도 붙여보지 못했고, 기관이 주도하는 한국형 후원제도는 음악인의 전문성까지 간섭하는 등 전혀 바람직하지 못한 결과를 빚고 있다. 많은 음악인들이 엄청난 대관료를 지불하며 가족과 사제간의 음악잔치 수준의 음악회를 여느라고 피를 말린다. 돈을 내고 공연장에 들어서는 사람은 극소수이고 음악 전문인이나 유명인사들은 초대권이 없이는 자리를 빛내주지 않는다. 이처럼 진정한 음악 애호가들이 소외된 현실에서 기본적으로 서양 문화권에 맞도록 설계된 음악 기획사들은 문을 열기가 무섭게 닫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우리 음악계에 문화개혁이 절실한 때다. 무엇보다도 고질적인 초대권 문화가 사라져야 하며 지역사회의 음악 애호가들이 중심이 되는 건전한 후원제도가 마련돼야 한다. 음악은 기업의 홍보물이나 특수층의 소유물이 아니다.

지역 시민의 의견이 운영체제에 반영되는 예술극장의 확립과 회원권 제도의 도입을 고려하자. 음악인들도 이제 높은 단에서 내려와 겸허한 자세로 대중에게 다가가야 한다. 예술음악의 대중화 혹은 생활화가 이루어지지 않는 한 우리 음악계의 내일은 어둡기만 하다.

그러나 음악계의 구조적 변화에 앞서 먼저 일어나야 할 것이 있다. 음악에 대한 인식 자체의 변화이다. 음악사회의 변질과 함께 이제는 거론조차 되지 않는 음악의 본질에 대하여 다시금 생각해야 한다. 선택된 소수만이 음악적이기 위해 다수로 하여금 비음악적이길 강요하던 음악문화는 빠르게 사라지고 있다.

인간성이 결여된, 즉 ‘우리’를 배제한 추상적이고 가식적인 음악행위는 더 이상 우리에게 감흥을 주지 못한다. 음악이란 원래 그 사회의 구성원들이 함께 만들고 함께 즐기는 공동체 문화이기 때문이다.

채현경(울산대 음대학장·음악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