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중훈! 중훈아! 박중훈이! 쟤! 너! 야! 박형! 미스터박! 박중훈씨! 박중훈님! 박중훈 영화배우님!….
저를 처음 보거나 모르는 사람들이 저를 부르는 호칭들입니다. 영화 때문에 얼굴이 알려져 여러 나이, 여러 부류의 사람들이 말을 걸어오십니다.
그 중엔 다소 무례하고 당혹스럽게 이야기를 건네오는 사람들도 있지만 오늘날 제가 받는 사랑은 수많은 관객님들이 주셨다는 생각에 최소한 겉으론 싱글벙글 웃으려 노력합니다.
▼취중문상 실수 못잊어▼
그러나 저보다 몇 살 많아보이지도 않는 사람이 “미스터박” “자네”하며 폼을 잡고, 저보다 어린 사람들이 함부로 대할 때면 알려진 사람이고, 관객의 사랑이고 뭐고를 떠나 박치기라도 해주고 싶습니다. 그 분들이 제게 기본적으로 호의를 갖고 말을 걸어오신 마음은 이해하면서도 우선 기분이 상하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몇해전 제법 친한 선배 한 분이 부친상을 당했다는 소식을 늦은 밤 술좌석에서 듣게 되었습니다. 그 다음날 새벽 일찍 발인이라고 하니, 술을 꽤 마신 그날 밤 문상을 가야 하나, 나중에 장례식이 끝나고 인사를 해야 하나 고민했습니다. 그래도 가는 편이 낫겠다 싶어 술자리를 중단하고 목동의 모 병원 영안실을 찾아갔습니다. 술기운에 정상적 컨디션은 아니었지만 똑똑한 어조로 그 선배의 슬픔을 위로하고 반듯하게 돌아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훗날 옆에서 지켜봤던 사람의 말에 의하면 제 걸음걸이나 발음은 취기를 숨기지 못했다고 합니다. 저는 조금이나마 슬픔을 나누려고 찾아갔지만 그 선배에게 결과적으로 큰 실례를 하게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예민한 성격의 그 선배는 그후 저를 대하는 태도가 눈에 띄게 달라졌고 지금은 거의 모르는 사람이 돼버렸습니다.
몇 년뒤인 작년 설날, 제 아버님이 돌아가셨습니다. 감사하게도 많은 선후배 동료 친구들이 찾아와 충격에 빠진 제 손을 따뜻하게 잡아주셨습니다. 그분들 대부분은 어두운 양복에 검정 넥타이를 매고 오셨지만 촬영장에서 또는 작업중 소식을 들은 분들은 아마 정장을 하고 올 상황이 안되셨나 봅니다. 심지어 찢어진 청바지에 모자까지 쓰고 온 분들도 있었고, 예전의 저처럼 술좌석에서 온 분들도 더러 있었습니다. 지난날 제 실수도 있고 해서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으며 그분들 역시 당연히 감사한 분들이지만, 상가집에 맞는 옷차림에 맨 정신으로 왔던 분들이 더 생각나는 것은 숨길 수 없는 제 솔직한 감정입니다.
▼좋은 의도 바르게 표현을▼
마음속의 아름다움, 상대방에 대한 배려를 바르게 표현한다는 것. ‘예의’란 그런 게 아닐까요? 아무리 의도가 좋아도 드러나는 표현의 형식이 잘못되어 있다면 오히려 관계를 악화시킬 겁니다. 세상에 알고 보면 나쁜 사람이 어디있겠습니까? 알기 전에도 좋아야죠. 아니, 최소한 알기 전 나쁘지는 않아야 되지 않을까요?
joonghoon@seromesoft.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