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그룹 구조조정이 지지부진한 양상을 보이면서 현대 각 계열사에 여신을 많이 제공했거나 계열사의 회사채를 인수한 각 시중은행 주가에 장기적으로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되고 있다.
시중은행 주가는 작년 7월 대우사태가 현실화하면서 일제히 곤두박질했다. 만약 현대그룹 사태가 원만하게 해결되지 않고 정부와 갈등이 깊어진다면 은행 주가는 작년 못지 않은 급락세를 겪을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보인다.
▽여신규모 함구한다〓각 은행들은 현대그룹 계열사에 대한 여신이나 회사채 인수규모에 대해 정확하게 밝히지 않고 있다. 하지만 시중에서는 각 은행이 현대그룹에 내준 엑스포져(여신+회사채)의 규모에 관한 설(說)이 분분하다.
현대건설 주채권은행인 외환은행이 4조원에 육박하고 한빛은행 2조6000여억원, 국민은행 2조5000여억원, 조흥은행 2조2000여억원 등인 것으로 알려져있다. 반면 주택은행이 6000여억원으로 가장 적은 편이고 한미은행은 7000여억원인 것으로 추정된다.
전문가들은 “은행별 주가에 대한 영향은 현대그룹 부실 계열사의 엑스포져를 점검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현대건설과 상선 석유화학 등 3개사 엑스포져는 외환은행이 1조1000여억원으로 가장 많고 한빛은행 8000여억원, 국민은행 5000여억원 등의 순으로 전해졌다.
▽장기적 악영향 미칠듯〓현대건설 유동성 위기가 수면 위로 부상한 5월 29일과 9일의 각 은행 종가를 비교하면 한빛은행이 35% 오른 것을 비롯해 외환은행 28%, 국민은행 6% 상승하는 등 표면적으로는 현대사태의 영향이 반영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작년 7월 대우사태가 발발했을 때 대우그룹 엑스포져가 많았던 하나은행 주가가 한달이 채 안된 기간에 44% 하락한 반면 엑스포져가 적었던 신한은행은 비슷한 기간에 24% 떨어지는데 그쳤던 상황이 재연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
증권업계에서는 현대그룹의 경우 부실계열사가 최악의 상황에 빠지더라도 대우그룹과는 달리 그룹 전체로 위기가 번질 확률은 낮을 것으로 보면서도 이 때문에 부실 계열사에 대해 정부가 강력한 대책을 마련할 가능성도 높은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메리츠증권 구경회연구원은 “한빛 외환은행의 경우 일부 부실계열사의 상황이 악화될 경우 입을 타격이 상대적으로 클 것”이라며 “국민은행은 부실계열사에 대한 여신이 많지만 수익력이 높아 손실을 흡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lee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