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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며 생각하며]조중연/축구강국 유소년에 달렸다

입력 | 2000-08-09 18:33:00


막연히 멀게만 느껴지던 2002년 월드컵이 이제 2년도 채 남지 않았다. 과연 월드컵을 성공적으로 치러낼 수 있을지, 또 우리 대표팀이 개최국 팀답게 좋은 성적을 올릴 수 있을지에 대한 기대와 염려는 필자처럼 축구계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만의 것은 아닐 것이다.

▼저변이 넓어야 수준 높아져▼

더욱이 얼마 전 열렸던 2000 유럽축구선수권대회(유로 2000)가 축제 분위기 속에 축구의 진수를 마음껏 뽐내며 끝났던 터라 다음 월드컵에 대한 기대가 커진 것이 사실이어서 더욱 그렇다.

어떤 이들은 사상 처음 벨기에와 네덜란드가 공동개최했던 유로 2000대회가 별탈 없이 끝난 것처럼 한국과 일본이 함께 준비하는 2002월드컵도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을 것이라 말한다. 반면 어떤 이들은 저조한 성적으로 예선탈락한 벨기에의 예를 들며 한국대표팀의 성적이 나빴다가는 축구협회가 국민적 원성을 견뎌내기 힘들 것이라며 잔뜩 겁을 주기도 한다.

한국축구에 대해 꽤나 심각하게 고민하는 축구팬들은 우리는 언제나 프랑스나 네덜란드 같은 축구 수준에 도달하겠느냐며 한탄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인구 1500만명에 등록된 축구 선수만 100만명이 넘는 네덜란드와 4000만 인구에 1만명이 조금 넘는 등록 선수를 가진 우리나라를 같이 놓고 비교한다는 것 자체가 어쩌면 무리인지 모르겠다.

한 나라의 축구 수준은 외형적으로는 국가대표팀이나 프로축구팀의 실력으로 나타나지만 결국은 유소년, 청소년 등 넓은 축구 저변에서 비롯된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평소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다가 월드컵 같은 큰 국제대회만 다가오면 ‘기필코 1승’, ‘이번엔 16강’ 하는 태도는 ‘누워서 곶감 떨어지라고 소리치는 것’과 같다.

다행히 최근 초등학교팀과는 별도로 유소년 축구교실팀이 많이 생겼고 몇몇 프로팀에서도 산하 유소년팀 창단을 준비하고 있어 초보적이나마 우리나라에도 클럽 시스템의 싹이 움트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장기적으로 한국 축구의 수준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저변을 넓힘과 동시에 엘리트 선수를 발굴 육성하는 것 역시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하다.

물론 지나친 엘리트 중심의 체육 구조가 그동안 한국 스포츠의 문제로 지적돼 온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선수층이 두껍다고 해서 인재가 저절로 나오는 것은 아니며 우리처럼 빈약한 저변에서 엘리트 육성조차 포기한다면 그 종목은 고사(枯死)하고 만다.

더구나 축구처럼 민족주의 경향이 강하고 세계 각국이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종목에서는 우수 선수들의 집합체인 각급 대표팀의 성적이 축구 붐 조성에 미치는 영향은 실로 엄청나다.

대표팀이 국제경기에서 승리하면 다음날 어린이 축구교실 문을 두드리는 어린이들이 폭증하는 것은 이제 새로운 얘기가 아니다.

축구협회에서는 올 2월 사상 처음으로 16세 청소년 대표팀을 브라질로 보내 한달간 전지훈련을 실시했다. 일부에서는 당장 그 성과가 나타나지 않자 일회성으로 끝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있지만 내년에도 어김없이 청소년 선수들은 축구선진국으로 떠날 것이다. 분명 그들이 성인 선수가 됐을 때 그 경험은 중요한 밑거름이 되리라 믿기 때문이다.

▼과학적 훈련-팬 사랑 아쉬워▼

또 올 여름부터 전국을 5개 권역으로 나눠 유소년 전문 지도자를 배치하고 지역별로 유소년 대표팀을 운영하는 시스템을 처음으로 가동하고 있다. 12세부터 15세까지로 구성되는 지역별 유소년 대표팀을 통해 지역별로 인재풀을 만들어 선수를 관리하고 해마다 우수한 선수를 솎아내는 방식이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 청소년 대표 연령에 해당되는 16세가 됐을 때 전국의 우수 선수들은 모두 검증을 거치게 된다. 비록 완벽한 육성 시스템은 아니지만 우리의 여건에서 가장 합리적인 방식으로 출발을 했다고 믿는다.

한국축구는 월드컵에서 항상 한골 차로 눈물을 삼키곤 했다. 그러나 그 한골 차가 실은 등록선수 100만 대 1만의 차이이며, 과학적 관리 체계에 의한 선수 육성 체계와 허술한 육성 체계의 차이이며, 항상 팬으로 가득 차는 축구장과 한일전 정도 돼야 가득 차는 축구 열기의 차이이다.

98년 월드컵과 2000 유럽선수권에서 연속으로 우승 트로피를 치켜든 프랑스를 부러워만 할 것인가. 축구계의 노력은 물론 전 국민적 관심과 지원이 절실한 때이다.

조중연(대한축구협회 전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