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부 유럽의 깊은 산자락 속에 우아한 자태를 수줍게 숨기고 있는 도시. 그림엽서에서 한 번쯤은 보았을 것 같은 이 곳을 내가 처음 알게된 것도 ‘사운드 오브 뮤직’이라는 영화 때문이다. 마리아가 결혼식을 올리던 대성당, 아이들이 뛰어 놀던 유럽식 정원, 알프스 산자락의 푸른 능선들…. 이곳이 지상에 실재하는 곳이라면 그 누군들 가보고 싶지 않겠는가?
매년 7월말에서 8월말까지 열리는 잘츠부르크 음악축제는 의심할 나위 없이 세계에서 가장 호사스러운 축제다. S석 입장권은 우리 돈으로 50만원에 이르고 왕궁에서 갓 나온듯 으리으리한 야회복 차림의 남녀는 이방인의 기를 죽인다. 극장 앞에 줄지어 선 호화 리무진에서 나오는 요인들을 경찰이 통제선을 쳐 보호하지만 할리우드의 명배우나 재계의 거물들은 심심치 않게 먼 발치에서도 알아볼 수 있다. 이런 호사스러움 때문에 음악제가 최고의 수준으로 유지되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베를린 필과 빈 필을 비롯한 세계 톱 클래스의 앙상블과 연주가들이 매년 이 산기슭의 도시를 열기로 들뜨게 한다.
97년 음악제에 간 나는 공연이 없던 어느날 산책이나 할겸 어슬렁거리며 호텔 밖으로 나왔다. 그런데 모차르트 오페라 ‘코지 판 투테’가 상상할 수 없이 싼 입장료에 공연된다는 포스터가 있는 것이 아닌가! 출연자도 호화로웠다. 독일어에 서툴렀던 나는 이게 웬 떡이냐 싶어 당장 생소한 이름의 극장을 찾아갔다. 그런데 천만에. 극은 인형극이었고 음악은 CD로 재생되는 것이었다. 얼굴이 붉어지면서 ‘그러면 그렇지’ 싶었지만 그런대로 재미있었던 기억도 이 음악제를 수놓는 추억의 하나다.
페스티벌은 1922년에 마구간을 개축한 ‘구 축제극장’에서 시작돼 이 고장 출신 천재인 모차르트의 오페라들을 중심으로 이어져 왔다. 이제는 모차르트의 음악 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공연예술 장르가 다 올려지고 있다. 요즘 음악제의 중심은 1960년 절벽에 동굴을 파서 만든 거대한 ‘신 축제극장’이다. 그 후 여기에서 또 한 사람의 이 고장 출신인 카라얀이 빈 필과 베를린 필을 매년 불러, 이 축제는 세계 최고의 수준에 이르게 되었다.
금년에 주목을 받는 공연은 클라우디오 아바도가 지휘하는 모차르트 오페라 ‘코지 판 투테’와 바그너의 ‘트리스탄과 이졸데’, 로린 마젤이 지휘하는 역시 모차르트의 ‘돈 조반니’ 등이다. 무려 12개의 오페라가 이번 여름 무대에 오른다.
박종호(음악칼럼니스트·신경전신과 전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