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침 향해 열린 문
한번 들어가면 3년간 나올 수 없다는 설악산 백담사 무금선원(無今禪院)의 무문관(無門關).
올 여름 안거(安居)가 시작된 5월 18일(음력 4월 15일). 선객(禪客) 스님 10명이 2003년 같은 날 나오기로 약속하고 스스로 무문관에 갇힌 날. 백담사 주지 득우(得牛)스님은 이날 방마다 두꺼운 자물쇠로 문을 잠근 뒤 혹 마음이 약해질까봐 열쇠를 모두 계곡물에 던져버렸다.
나가고 싶을 때 나갈 수 없고 누군가를 들이고 싶을 때 들일 수 없는 문이라면 없는 것이나 다름없으니 말 그대로 이곳은 ‘문이 없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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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백담사 주지 득우스님 "깨침향해 열린 門"
관광객들로 혼잡한 백담사를 뒤로 하고 ‘출입통제’ 표지를 지나 150m가량을 올라가면 무문관이 나타난다. 무문관을 구성하고 있는 3채의 건물은 ㄷ자 형태로 서 있는데 문이 있는 쪽이 모두 서로 등을 돌리고 면벽좌선(面壁坐禪)하듯 산이나 계곡쪽을 바라보고 있는 특이한 구조다. 지나가는 바람소리마저 정진을 방해할까봐 풍경조차 달려있지 않은 건물. 손질을 하지 않아 잡초만 무성한 안마당에는 무서우리만치 깊은 침묵이 흐른다. 말 있음으로써 말 없는데 이르는 것이 교(敎)라면 말 없음으로써 말 없는데 이르는 것이 선(禪)이라고 했던가. 은산철벽(銀山鐵壁)같은 공안(公案)을 깨치려고 스님 10명이 방마다 한명씩 웅크리고 있을 것이지만 인기척 하나 들리지 않는다.
누군가 입재(入齋)시 벗어놓고 미처 방안으로 들이지 못한 흰 고무신 한짝만이 외로이 흘러간 시간을 침묵으로 말해주고 있다. 신발안쪽에는 흙먼지가 진득진득 묻어 있고 신발사이 거미가 줄을 친 위로 어디선가 굴러온 낙엽 하나가 얹혀져 있다. 3년후에 이 고무신은 또 어떤 모습으로 변해 있을까.
깊은 침묵에 쌓인 백담사 무문관
독방은 가로 한칸, 세로 두칸 크기의 좁은 공간이다. 수세식 좌변기와 간이 샤워기가 설치돼 있고 상하기 쉬운 음식물을 넣어둘 수 있는 작은 냉장고도 한 대 있다. 예전에는 무문관이라 해도 뒷간 등을 이용해야 했기 때문에 울타리만 벗어나지 않으면 됐으나 변기나 세면시설마저 방안으로 들어가면서 생활은 훨씬 답답해졌다.
무문관도 예외적으로 하루 한번 외부에 문을 연다. 매일 오전 11시 방마다 유일하게 외부와 통하는 작은 공양구(供養口)가 열리고 시봉(侍奉)을 맡은 스님이 공양통에 담아 식사를 넣어준다. 물론 이 짧은 시간이 지나면 무문관은 다시 헤어날 수 없을 것 같은 깊은 침묵속에 빠져든다.
밥과 국, 삼찬으로 이뤄진 한끼 정도의 식사분이 하루 종일 먹는 양의 전부. 영양보충을 위해 과일이나 우유 같은 것이 정기적으로 제공된다. 생식을 하는 선객 2명에게는 불에 데우지 않은 야채만이 제공된다. 아침 저녁으로 방안에서 108배를 해보고 경행(輕行)삼아 서성거려보지만 운동량이 절대 부족하니 소식(小食)이 불가피하다. 적게 먹어야 정신이 맑아지고 몸이 가벼워 수행을 제대로 할 수 있다.
해뜨고 지는 것 외에 하루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를 알 수 없는 무문관에서는 오전 11시가 하루의 중심이다. 시봉을 맡은 스님은 비가 와서 계곡물이 넘칠 때는 로프를 타고서라도, 눈이 내려 머리까지 찰 때는 길을 다 만들어서라도 필사적으로 공양시간을 지키려 애쓴다.
주지 스님의 안내를 받아 묵언(默言)을 하고 발소리도 들리지 않게 살금살금 무문관을 도는데 갑자기 공양구를 통해 불쑥 머리 하나가 삐져나와 놀라게 한다. 침묵의 공간에서는 아주 작은 소리에도 예민해지는가 보다. 수염은 전혀 깍지 않은 듯 목까지 내려올 정도로 길고 머리카락도 꽤 자라 있다. 주지 스님을 손짓으로 부르더니 둘이 서로 귀에 대고 몇마디 얘기를 주고 받는다. 무문관을 나오면서 주지 스님은 “오늘이 몇일이냐고 물어보더라”고 말해준다.
백담사에 밤이 깊어간다. 무문관에도 불이 하나둘 꺼진다. 밤새도록 불이 꺼지지 않는 방이 하나 있다. 한번 잡은 화두를 놓치지 않으려고 용맹정진하는 선객이 장좌불와(長座不臥)에 들어간 것일까. 아니면 와선(臥禪)중 자신도 모르게 잠이 든 것일까. 백담계곡에 흘러내리는 물소리만이 무심히 정적의 무문관을 가득 메운다.
pi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