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중이지만 시각장애인들의 배움터인 서울 종로구 신교동 서울맹학교에 거의 매일 나가고 있는 이 학교 물리치료과 교사 진창원씨(32). 중학교 시절 망막상실로 시각장애인이 된 그는 전철을 이용해 인천 부평구 산곡동 집에서 학교까지 다니면서 인도에 무심히 방치된 오토바이나 장애물 등에 무릎과 머리를 부딪치기 일쑤다.
그래서 무릎 정강이 등에 피멍이 가실 날이 없다. 경계망이 설치되지 않은 도로경계석은 낭떠러지나 다름없어 이런 곳을 지나다 안전사고를 당할 뻔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그는 “음향신호기가 고장나거나 설치되지 않은 횡단보도가 많은데다 차도와 인도 구분이 뚜렷하지 않아 장애인들이 늘 사고위험에 시달리고 있다”고 말했다.
진씨와 같은 시각장애인 등 지체장애인 대부분은 인도 횡단보도 지하철 공공건물 등에 장애인 편의시설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 큰 불편을 겪고 있다. 점자블록을 따라 인도를 걷다 보면 엉뚱한 상가건물에 부딪치기도 하고 육교나 계단 등에 설치된 일부 경사로는 너무 가팔라 휠체어를 탄 장애인들에게 ‘죽음의 경사로’로 불리기도 한다.
서울 도심 한복판인 종로구 일대의 경우 장애인 편의시설이 아직 취약한 것으로 밝혀졌다. ‘장애인 편의시설 촉진 시민연대’가 최근 종로구 인사동 등 도심권 4개 동 횡단보도 42개를 대상으로 장애인 시설 실태조사를 벌인 결과 조사 대상의 26%인 11개만 3개 항목의 법정 기준을 지킨 것으로 나타났다.
3㎝ 이하의 횡단보도 턱 높이가 지켜지지 않거나 점자블록과 경사로가 설치되지 않은 곳이 대부분이었다.
장애인 시설이 보강되고 있는 곳도 눈가림식 공사로 장애인들의 불만을 사고 있다. 이달 말까지 완공될 예정인 인사동과 혜화동 1.8㎞ 구간에서의 점자블록 설치공사는 현재 인도블록과 비슷한 색깔인 검은색 계통의 점자블록을 깔고 있어 시각장애인에게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시각장애인의 70% 정도는 물건의 명도차가 클 경우 이를 감별할 수 있는 잔존시력을 갖고 있다.
한국시각장애인복지재단 신동렬 사무국장(52)은 “공공기관이 전문가와의 사전 협의도 없이 규격과 색도가 천차만별인 장애인 편의시설을 설치하고 있어 법적인 의무사항만 지키려 한다”고 비판했다.
한편 서울시 조사 결과 서울 시내에는 현재 장애인편의시설을 설치해야 할 18만2111곳 중 64.6%만이 시설을 설치한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시 관계자는 “2004년까지 장애인 편의시설 설치율을 80%까지 끌어올릴 계획”이라면서 “이달 말까지 장애인 편의시설을 설치하지 않은 종합병원과 공공기관 등에 대한 심의작업을 마친 뒤 시정명령이나 이행강제금부과 등의 행정처분을 내릴 예정”이라고 말했다.
min07@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