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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우의 게임월드]엑스 컴 1:UFO 미지의 적

입력 | 2000-08-10 19:11:00


선택할 수 있는 경우의 수가 늘어나는 건 아무리 생각해봐도 좋은 일이다. 전에 고를 수 있던 것에다가 몇 가지가 추가되니까 최소한 전보다 더 나빠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가끔은 ‘아무 것도 선택할 수 없으면’ 하는 때가 있다. 뭘 먹을까 머리를 싸매다 보면 뭐가 나오든 묵묵히 먹어야 하는 학교나 회사 식당이 그리워진다. 고대하던 창업을 했는데 대강 시간만 때우면 되던 샐러리맨 시절이 자꾸 생각난다.

‘엑스 컴 1: UFO 미지의 적’은 출시된 지 6년이 넘은 게임이다. ‘엑스 컴’의 전투는 턴 방식이다. 우선 우리 편 유닛을 전부 움직이고 다음은 상대편 차례다. 그러니까 실시간 전략 게임처럼 쉴 새 없이 이루어지는 공방은 없다. 다음에 어떤 행동을 할 것인가 생각할 시간이 얼마든지 있고 배가 고파지면 라면 한 그릇 먹고 오면 된다. 하지만 긴장감이 없지 않다. 이 게임보다 더 긴장해야 하는 게임은 없다.

‘엑스 컴’의 전투 시스템에서 제일 중요한 건 ‘액션 포인트’다. 걷거나 앉거나 일어서거나 총을 쏠 때마다 액션 포인트를 소비한다. 액션 포인트 내에서는 어떤 일도 할 수 있다. 선택에는 어떤 제한도 없다.

대신 선택은 굉장히 신중해야 한다. 상대가 뭘 하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아주 가까이 오지 않는 한 외계인이 시야에 들어오지 않는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어두운 복도를 걸어간다. 돌아서는데 외계인이 있다. 그리고 남은 액션 포인트가 없다. 할 수 있는 건 다음 턴에 외계인이 총을 쏠 때 빗맞기를 기도하는 것 뿐이다.

보이지 않는 적 때문에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가짓수가 엄청나게 늘어난다. 변변한 단서 하나 없이 적의 움직임을 예측해야 한다. 해야 할 일이 많고 갈 길이 바쁘지만 만일의 경우를 위해 액션 포인트를 남겨놓는다. 적을 발견해도 액션 포인트를 많이 소비하는 조준사격 대신 정확도는 떨어지더라도 액션 포인트를 아낄 수 있는 연속 사격을 고려해본다.

그래도 만족할 수 없다. 모든 걸 다 고려해 최선을 다 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더 잘할 수도 있었다는 생각이 끊임없이 나를 괴롭힌다. 그래서 나는 미쳐 버린다. 편집증이 나와 내가 움직이는 유닛들을 사로잡는다.

턴 방식 게임에서는 쉴새없이 몰아칠 필요가 없다. 하지만 ‘엑스 컴’에서는 선택과 선택 사이에 충분히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있는 게 오히려 더 팽팽한 긴장감을 가져온다. 몸과 마음을 유연하게 할 수 있는 편안한 휴식 시간이라고 생각했던 게 절대 끝나지 않는 작전 시간이라는 것이 밝혀진다.

실시간이라면 그냥 포기해버릴 많은 것들까지 전부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외줄타기라도 하는 것처럼 긴장이 넘치고 스릴이 있다. 물론 ‘엑스 컴’처럼 매혹되기에 충분할 만큼 잘 만들어진 게임에만 해당되는 말이다.

박상우(게임평론가)

sugulman@chollian.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