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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赤에 비친 뼈아픈 사연]"재산도 北가족에 다 준다니"

입력 | 2000-08-11 18:55:00


이산가족방문단 교환 행사를 앞두고 대한적십자사에는 매일 ‘분단의 상처’가 생생히 전해지고 있어 직원들의 마음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

10일 적십자사에는 분노에 가득 찬 목소리의 전화가 걸려 왔다. “아버지 성을 물려받은 우리가 아니면 누가 만나느냐.”

북한에 아들을 남겨 두고 월남한 부부가 남쪽에서 이혼한 뒤 각각 재혼, 가정을 이룬 상태에서 이번에 북의 아들이 내려오게 되자 양쪽 가족이 서로 상봉하겠다고 다투는 전화였다는 적십자사 직원의 설명이었다.

7일에는 북한에 아내와 자식을 남겨 두고 월남한 사람과 결혼해 한 평생을 보낸 70대 할머니가 전화로 울먹였다.

“요샌 바깥사람이 나와 우리 아이들은 거들떠보지도 않아요. 북의 가족을 금방이라도 만날 것처럼 들떠서는 ‘재산도 불쌍하게 살아온 북의 가족들에게 다 물려주겠다’고 하고, 혈혈단신 월남한 사람을 50년 동안 뒷바라지하며 3남매를 낳아 길렀는데…. 이 양반이 북의 아내를 만나면 나는 첩입니까, 뭡니까.”

반대로 일 주일전쯤 적십자사를 찾아온 한 할머니(70)의 사연은 직원과 자원봉사자들의 눈시울을 적시게 했다.

황해도 해주가 고향인 이 할머니는 49년 야음을 틈타 남한으로 향하는 배에 올랐다. 원래 남편과 함께 오기로 했으나 배에 빈자리가 하나밖에 없었던 것.

할머니는 “뒷배로 곧 따라가겠다”던 남편을 그 후 만나지 못하고 51년 동안 수절해 왔다. 할머니는 남편 사진도 없어서 너덜너덜해진 남편의 호적등본 한 통만 애처롭게 만지작거리며 “그 사람이 북에서 재혼했으면 나는 어쩌지”라는 말만 연신 되풀이했다.

북이나 남의 가족들이 ‘다칠까 봐’ 이산가족으로 등록하지 않은 경우도 적지 않았다.

최근 적십자사를 찾은 박모씨(56)는 월남 당시 북에서 촉망받는 관리로 지내던 아버지에게 피해를 주게 될까 봐 그동안 이산가족 방문 신청을 꾹 참아 왔다는 것. 그러나 최근 이산가족방문단 교환 소식을 접한 어머니(77)가 그리움을 이기지 못하고 식음을 전폐하자 적십자사를 찾았다.

반대로 장모씨(66)는 남한 사회의 차별과 편견이 두려워 6·25전쟁 때 자진 월북한 부친과 삼촌 찾는 일을 체념해 온 경우. 장씨는 11일 이산가족찾기 신청서를 작성하면서도 “이제는 정말 괜찮겠지”라고 여러 번 되물었다.

그러나 최근의 남북 화해 무드로도 분단과 전쟁의 상흔을 완전히 치유하지는 못했다. 60대의 한 노인은 최근 전화를 걸어와 “단지 기독교집안이라는 이유로 온 가족이 인민군의 죽창에 찔려 죽었다”며 “북한놈들이 사과 한마디 안하는데 이산가족 상봉은 다 뭐냐”고 분노하기도 했다.

eodl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