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경제를 혼란의 도가니에 밀어넣었던 현대사태가 20일만에 극적으로 타결됐다.
주말을 고비로 핵심쟁점이었던 자동차 계열분리안과 자구계획안이 현대, 채권단,공정위 3자간 일괄타결을 본 것이다.
이는 각 이해당사자가 더이상 실익(實益)없는게임을 계속할 이유가 없다는 인식이 작용했지만 시장혼란과 함께 국정불신을 낳고있는 이번 사태를 조기수습하려는 정부의 의지도 강력히 뒷받침된 것으로 분석된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정부.채권단이 요구한 3개항중 지배구조 개선문제가 `미제'로 남겨진 점이 논란의 불씨로 작용할 공산도 없지 않다. 당초 자구 및 계열분리 조기이행을 위한 `압박카드'로서의 역할에 불과했다는 해석도 있지만 `⅔' 해법을 시장이 어떻게 받아들일런지는 미지수다.
◇ 왜 극적타결됐나 = 시기만 크게 앞당겨졌을 뿐 이미 예정된 수순이었다고 볼수 있다. 사태해결의 당사자인 현대가 사실상 `백기(白旗)'를 들고 채권단과 공정위의 요구를 최대한 반영하는 쪽으로 태도를 바꿨기 때문이다. 채권단과 공정위로서는각기 방점을 찍은 `자구'와 `계열분리'라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만큼 더이상 밀어붙일 명분이 부족해진 셈이다. 여기에 김대중 대통령의 조기매듭 지시에 따라 `발등의 불'이 떨어진 새 경제팀의 입장도 크게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의약분업 사태와 함께 국정 최대현안으로 부각된 현대사태를 질질 끌 경우 시장붕괴는 물론 통치권자의 부담으로 이어질 것을 몹시 우려했다는 분석이다.
◇ MH의 역할 = 다만 이처럼 시기가 앞당겨진 것은 MH(정몽헌 현대아산 이사회의장)의 역할이 크게 작용했다는 관측이다. 실무협상이 무르익어가자 정 의장은 `실권'을 바탕으로 11일 이근영 금융감독위원장을 만나는 등 관계당국자들과 연쇄접촉,사태해결의 실마리를 풀었다는 것이다. 현대 관계자는 "정 의장이 북한에서 돌아온직후 직접 관계당국을 찾아다니며 설득작업을 벌였기 때문에 조기 일괄타결이 가능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 계열분리안 = 현대사태의 근인을 제공한 자동차 계열분리안은 정주영 전명예회장의 자동차 지분 9.1% 가운데 6.1%를 매각, 현대건설이 발행한 채권을 매입하는등 현대건설 유동성을 적극 지원하는 쪽으로 매듭지어졌다. 결국 채권단 요구사항을십분 반영하면서 공정거래법도 충족시키는 해법을 찾은 셈이다. 다만 정 전명예회장의 `명예'만큼은 살리는 형식을 취하겠다는 것이 현대의 입장이어서 매각형태와는별도로 새로운 빅카드가 등장할 가능성이 높다.
중공업 계열분리도 확실한 `보증'을 받았다. 현대는 늦어도 2001년 상반기까지계열분리를 매듭짓기로 하고 걸림돌이 되는 지분을 조속히 정리해 나갈 계획이다.
◇ 자구계획안 = 현대가 내놓은 현대건설 자구계획안의 핵심은 이행내역의 `견실화'다. 현재 5조6천억원 규모의 총부채를 4조원으로 낮추기 위해 1조5천억원의 유동성 확보계획의 투명성을 높인다는 의미다. 이에따라 현대측은 지난 5월31일 발표한 유동성 확보계획중 실효성이 떨어지는 5천억원을 고스란히 도려내고 단기적으로실현가능한 5천억원으로 대체한 것이다. `대체분'인 5천억원은 크게 세갈래로 나뉜다. ▲건설보유 상선(23.86%.246만주).중공업(6.9%.526만주) 지분의 교환사채(EB)발행 ▲방글라데시 시멘트공장, 중국 다롄(大連) 오피스텔 등 국내외부동산 매각 ▲국내외 공사관련 선지급금 및 대여금, 채권 조기회수다. 이중 가장 논란이 일었던 대목은 상선지분의 정리문제였다. 채권단은 그룹계열사간 연결고리 역할을 해온 상선지분을 정리할 것을 요구했으나 현대로서는 난색을 표해왔다. 이는 현대건설이 상선지분을 포기할 경우 건설→상선→중공업.전자로 이어지는 지배구조의 근간이 뒤흔들려 그룹이 사실상 해체되기 때문이다. 이에따라 현대측은 채권단의 상선지분 정리 요구를 받아들이되, 지배력은 유지하는 선에서EB형태라는 대안을 제시했고 채권단도 유동성 확보에 지장이 없다는 이유로 한발 물러선 것이다. 현대는 이와함께 현대강관, 고려산업개발 등 상장주식을 9월이전 장중매각하고 현대석유화학, 현대정유 등 비상장주식을 연내에 제3자에게 매각하는 등보유 유가증권 매각방법과 시기를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부동산 매각방안은 원안이 크게 수정됐다. 현실성이 없는 것으로 지적된 서산농장 자산담보부 증권(ABS) 발행과 인천철구공장 매각 계획은 철회하고 그 대신 매각가치가 높은 해외부동산으로 `물갈이'됐다.
◇ 지배구조 개선 = 문제경영인 퇴진으로 집약됐던 지배구조 개선문제는 현대가일정정도 `약속'을 하는 선에서 싱겁게 일단락됐다. 우선 외자유치와 유동성 확보등 현안수습을 위해 `즉각퇴진'은 어렵고 다만 추후 이사회와 주주총회 등 소정의절차를 밟아 거취여부가 결정될 것이라는게 현대의 주장이다. 채권단도 특정경영인을 지목해 퇴진을 요구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현대의 `약속'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한때 불거졌던 3부자 퇴진약속 이행의 경우 앞으로 그같은 약속을 계속 이행하겠다는 수준에서 마무리됐다. 그러나 이 대목은 정부가 재벌개혁의 역점추진 과제로 못박은 지배구조 개선과 맞닿아 있다는 점에서 논란이 빚어질 가능성도 있다. 일각에서는 결국 정부가 대(對)현대 압박에서 이렇다할 개혁성과를 얻지 못한게 아니냐는곱지않은 시각도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노효동기자 rhd@yonahpnews.co.kr]